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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필/삶

가출소년의 화려한 외출

by 眞草 권영수 2025. 1. 17.

'가출소년의 화려한 외출'이라는 표현이 웬지 와 닿지도 않고 너무 러프(Rough)하다. 어느 대학 총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묘사한다면 무례한 일이 아닐지? 아니면 생뚱맞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서로 눈빛으로 마주치자 그분이 다가와 가슴으로 맞이해 준다. 이렇게 축하의 자리로 '손에 손잡고' 축복스러운 날도 있는가 보다. 바로 수도권의 한 대학에 총장으로 취임하신 그 분의 초대를 받아 밥 한끼와 차 한잔을 함께 나누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해 잠시 뒤돌아 볼 시간이 주어졌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일지 몰라도 어느 산골짜기 기슭 고향땅을 탈출할 그 당시에는 가출소년이나 마찬가지이었던 애송이 촌놈에 불과했겠지. 죽마고우(竹馬故友)나 다름없던 그토록 대학시절 부터 여태껏 가까운 지인으로 막역하게 지내오던 사이이다. 그러니 어떻게 표현을 하든 무슨 허물이 될까? 그동안 젊은 시절에 온갖 고난과 역경은 물론 모든걸 극복하고, 어느 누구의 도움 하나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노력으로 정상에 서 있는 모습이다.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 오버랩해 보니 저절로 찬사와 함께 참으로 자랑스러워 보인다.

 

"도대체 그때 거기에는 왜 갔던거야?" 글쎄 청소년 시절에 도망쳐 나오듯 도회지로 뛰어나와 보니, 모든게 어설프고 설 자리라곤 전혀 없었던 참혹기로 자신들의 초라했던 모습에 그냥 그렇게 쉽게 나온 모양이다. 지방의 한 도시에서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했던 시간을 두고 그분과 나 이렇게 어렴푸시 투영이라도 되었나 보다. 눈빛만 봐도 그렇고 서로의 과거를 너무 잘 알고 있었을테니... 바닥인생이나 다름없던 과거로 회귀에 '고난의 길'이 잠시 벅찬 가슴으로 한 채 잠시 맴돌고 있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어느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꿈이라도 있어 행복했던 어린 시절 동네 한 모퉁이 빨간 우체통은 언제나 외롭게 눈비 바람을 맞아 가며, 항상 오고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다. 소년은 그 우체통만 바라보아도 설레이고 기분이 좋아서 그 앞에 서면 소망과 꿈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마냥 우쭐해진다. 또 소망을 담은 편지를 써서 고이 접어 우체통에 넣으면 늘 해맑은 미소로 반겨 주었다.

 

소년은 꿈도 희망도 뭔지도 잘 모르고 지낸다. 비가 온뒤 산중턱에 내려앉은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을 보고 그때서야 희망도 생각했고 꿈도 그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희망을 찾아 떠나는 소년은 초라한 외출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조그만 꿈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굴곡진 삶의 순간순간마다 눈물도 많이 흘렸을테지. 그 소년은 예뻐만 보였던 그 무지개 생각이 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에 온갖 고통도 오롯이 참아내며 외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을테지. 그래서 소년은 꿈을 먹고 자란다. 살아가는데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르니...

 

시간도 흐르고 세월도 흘러 그 청년들이 패기도 열정도 함께 젓먹은 힘을 다해서 자신의 임계점이라는 한계치를 뛰어넘어야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의 과거이었잖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울 줄 모른다.(一日之狗不知畏虎)' 속담 처럼 겁도 없이 지내던 그 시절이 떠올라 순간 행복했다. '무에서 유를 창출'이라는 순수했던 도전정신이 어찌나 대견했을지? 그것도 모른채 스스로 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보면 과분한 삶을 함께 영위(營爲)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소년의 입장에 비하면 지금의 현실이 한송이 꽃이라도 세상으로 내밀 수 있을테니.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있고, 분수에 넘칠 정도의 은혜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어린시절은 초라하게 출발했지만 세월이 흘러서 이제는 현실세계로 반듯한 외출을 하고 있지 않은가? 과장일지 모르지만 이를 한마디로 한다면 바로 '가출소년의 화려한 외출'로 일련의 완성체가 아니던가? 잠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니 세상에 감사할 뿐이다. 그토록 앞날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