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아버지 뭐하시노?“ 갑자기 무슨 왠 뚱단지 같은 소리하느냐고, 시골서 어릴적 제일 듣기 싫었던 말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 '친구'에서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묻던 질문이 아니던가? 요즘 특혜 채용과 금수저 논란이 되는 와중에 힘없는 청년들 사이 지나간 유행어를 빗대어 '너' 대신 경상도 사투리 '느그'로 표현해서 사용한 말이다.
척박한 산골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린 마음에 제대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처지라 이 말 한마디를 듣기라도 하면 반항심리로 불쑥 내 뱉은 듯하니 수긍이 갈 법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히러 기회로 작용해 올곧은 길로 가도록 인도하였을 뿐더러, 어찌보면 오기라도 부리듯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고 온갖 한계를 극복하고 넘사벽이라 할 수 있는 그릿 (Grirt)을 뛰어 넘을 수도록 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꽤 유명세를 탔던 한 배우의 얘기 중에 대중들로 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게 되기 까지 그가 아버지의 후광을 받지 않기 위해 예명으로 데뷔하고, 부모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본인의 자생력으로 모두 이루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면서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에서 항상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배짱좋은 추진력으로 정면돌파하는 사람은 분명히 자신의 능력이고,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젊은 사람들은 이런 금수저를 바라볼 때 달리기 경주에서 첫 출발지점이 다른 것같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력감이나 절망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반면에 부모의 뒤를 이어 현실무대에 데뷔하는 자녀들은 처음부터 부모와 함께 출연하는 프로에 등장하거나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설명보다는 대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언급하는 것을 간혹 보곤 한다.
태어나보니 아버지 잘 만나 언제든 기댈 데가 있는 금수저일지라도 처음엔 기회를 쉽게 잡겠지만, 보이지 않는 함정과 가파른 굴곡이 숨어있는 세상일 가운데 스스로 인정받고 롱런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시간이 흐르거나 한 세대가 넘어갈 때 이 길이 아니면 안된다는 간절함이 모자라, 부족함을 만회하려고 노력과 열정으로 채워야 하는데도 전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 팔자는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잘났든 못났든 어찌 할 것인가? 결국 모든게 본인 스스로 떠맡아야 하는 걸, 자생력이나 생활력으로 하나하나 거슬러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 모두 젊은 날의 얘깃거리로 회환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는 한 세대를 지나 우리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해 버렸다.
나는 과연 아버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잘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모두가 자유롭지 못해 잠시 멈칫해 버린다. 생업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느라 그러지 못했다는 이유는 아무래도 부족해 보인다. 요즘에 와서 반문도 해보고 반성도 해 본다. 아버지로서 중요 순간을 간혹 놓쳐버렸다는 사실을 자녀들의 행동으로 부터 얼핏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 자식들의 이상형이 '아빠를 닮지 않은 사람'이라고 일반화하는 편이 편할지도 모른다. 아버자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달갑지 않아 하는 수많은 자녀들을 길러낸, 한국식 가부장적 사회가 빚어낸 비참한 현상인 듯 싶다.
하지만, 흙수저 신분으로 각박한 삶속에서 자신의 공간을 찾기위해 아무런 끄나풀도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진심을 다했기에 한편으로 미련은 없다. 아버지의 자리가 크게 빛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명함 몇장 제시할 것이 있다고 스스로 자처해 본다. 자기 몫이나 구실을 못하고 허둥대는, 중심을 못잡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이 한마디, 그 이름으로 부터 삶의 애환과 자신의 이념이 그속에 고스란히 녹아 스며들어 있다. 또한 그 자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평가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마음 한곳에 늘 아쉬움과 애절함이 간절히 묻어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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