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 수필/58회

우리의 이름 아버지

by 眞草 권영수 2013. 8. 13.

 

우리의 이름 아버지

여러 모임서 친구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 본다. 집에 들어가 보면 아들 딸 가릴 것 없이 지 엄마랑은 말도 잘 나누고 아주 친근하다고, 그런데 남자인 우리의 이름, 아버지 하고는 어딘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나도 그런가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것 같다.

 

이는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보면 이해도 될만 하다. 예로, 아이가 밖에서 다쳐서 들어오면 엄마는 “어디 다쳤냐 얼마나 아프냐” 하고는 정성들여 약을 발라주고 쓰다듬어 준다. 똑 같은 상황에 아버지의 대처는 분명히 다르다. “남자가 그 정도가지고 뭘 그래 남자는 그러면서 크는 거야“ 얼버무려 버린다. 이런 아버지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 반응이 그럴 수밖에 없으리다.

 

2004년 영국문화원은 개원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영어를 쓰지 않는 비영어권 102개국 4만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물어 보았다고 한다.

 

1위는 단연 어머니(Mother)였다. 2위는 열정(Passion)이었고, 3위와 4위는 각각 미소(Smile)와 사랑(Love)이었다고 한다. 1위에서 70위까지 매긴 맨 끝 순위에도 아버지는 끼지 못했다. 호박(40위), 바나나(41위), 우산(49위), 캥거루(50위)만도 못한 것이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들이다. 

 

102개국 비영어권에는 당연히 우리나라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과 체면도 불구하고 몸으로 맞서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런 아버지들은 쓴 소주잔을 들이키며 머리도 밀고, 직장을 살리기 위해 저녁도 못 먹고 밤샘을 하다 잠시 눈을 붙이려 집에 왔다가 어디 엔가에 쫓겨 다시 새벽길을 서둘러 나서는 아버지는 결코 무심한 사람이 아닐 터이다.

 

남자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식구들이 모두모여 기다려도 일이 있으면 늦어도 되는 줄 알았다. 아이 생일을 기억 못해도 친구와 한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야 하는 의리 넘치는 사나이 이면 되는 줄 알았다. 가정의 소소한 즐거움 보다는 직장과 조직에서의 성공이 더 위대한 줄 알았다. 그래야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나의 이름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였다. 자녀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였다.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길 다정한 말 한번 건네주길 바라는 아버지였다.

 

이젠 우리 아이들도 제 갈 길을 찾아 서울로 가버렸다. 아니 궁극적으로 부모 곁을 떠나는 게 당연한 일일 터이다. 식구라야 부부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옛날 어릴 적 부모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영감 할머니만 남아 자식 뒷바라지 하고 있다”는 그 모습, 어김없이 바로 그 자리를 대신한 모습이다.

 

정성껏 마련한 저녁밥상에 함께 앉아 오늘 일어난 이야기를 서로 들려주며, 반찬이 맛있다며 밥 좀 더 달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아내가 있는 남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어느 듯 50 중반에 접어 든 남자, 우리의 이름 아버지, ‘아버지가 누구인가’아래 좋은 글을 보고, 살면서 흐트러진 아버지의 위상을 정립해 보자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란 누구인가?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기가 기대한 만큼 아들, 딸의 학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속으로는 몹시 화가 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일어나 바삐 달려가는 장소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 끝없는 일, 직장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 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진,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로는 웃고 있는 사람이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문을 쳐다본다.

아버지가 가장 기뻐할 때는 자식들이 남의 칭찬을 받을 때이다.

 

아버지가 가장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속담이 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교훈은 손수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라는 속담이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그럴 듯한 교훈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이 모범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미안하게 생각도 하고 남 모르는 콤플렉스도

갖고 있다.

 

아버지는 곧잘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 까닭은 ‘아들, 딸들이 나를 닮아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제발 나를 닮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판단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나이에 따라 변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고 한다.

4세 때 - 아빠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7세 때 - 아빠는 정말 아는 것이 많다.

8세 때 - 아빠와 선생님 중 누가 더 높을까.

12세 때 - 아빠는 모르는 것이 많아.

25세 때 - 아버지를 이해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미 갔습니다.

30세 때 - 아버지의 의견도 일리가 있지요.

40세 때 - 여보! 우리가 이 일을 결정하기 전에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50세 때 -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셨어.

60세 때 -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꼭 조언을 들었을 텐테..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아버진,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보고 싶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결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들, 딸들은 아버지의 수입이 적은 것이나 아버지의 지위가 높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속으로만 운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어른인 체를 해야 하지만, 친한 친구나 맘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소년이 된다. 

 

어머니 앞에서는 기도도 안 하지만, 혼자 차를 운전하면서는 큰소리로 기도도 하고 주문을 외우기도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