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람' '꽃바람 여인' '꽃밭에서' 노래로 봄의 절기에 맞추어 꽃타령이라도 해볼까? 이 노래 가락을 타고 온유(溫柔)한 바람이라도 막 불었으면 좋겠다.
“봄바람이 부니 뜰안의 매화가 먼저 피고, 앵두 살구 복숭아 배꽃이 차례로 피네. 깊은 골짝 냉이꽃 느릅나무 움까지 트니, 내게도 역시 춘풍이 불어 오리라"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춘풍(春風)' 시를 읊어 본다.
이 시가 전하는 것 처럼 세상의 이치가 모두 엇비슷할 지도 모른다. 요즘은 봄철이라 여기도 꽃 저기도 꽃 주변에 온통 꽃으로 뒤덮혀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런 봄의 향기는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 나간다. 마음으로 몸으로 온전히 느낄 정도로 계절이 주는 선물이랄까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앵행도리(櫻杏桃梨)라는 말이 떠오른다. '앵두 살구 복숭아 배' 꽃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다. 그 꽃들이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히 종도 다르고 모양새도 향기도 다 다르다. 따스한 봄철이라 봄의 기운과 햇살에 따라 온갖 꽃들이 주변에 피고 또 피어날 것이다. 이를 두고 '차례대로' 또는 '다투어' 핀다고 한다. 그러나 꽃들의 개화에 순서나 다툼이 없다. 자기 고유의 생체리듬과 성장속도가 있을 뿐, 꽃의 모양과 빛깔, 향기도 제 나름의 것이며, 맺는 열매 또한 남을 흉내낸 것이 없다.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라 이루어야 할 '생애 과업'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인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초조함은 더 커진다. 반면에 식물의 생애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진다. 적산온도(積算溫度)에 따라 생육기간 온도를 누적해서 채우고,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개화와 결실을 하게 된다. 이는 식물의 종마다 다르다. 이렇듯 각자의 온도차로 때가 있어 삶의 속도나 흐름도 그렇겠지.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앵리도리(櫻杏桃梨)랄까? 모두 only one 즉 유일하다. 참으로 소중한 존재로, 귀하고 귀한 제 나름의 꽃이다. 해서 자신만의 꽃길을 깔고 그 길로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시절은 눈에 띄지 않아도, 그 속에서 변화와 함께 준비로 차곡차곡 쌓인다. 혹시 지금이 그 시기라면 자신의 시간표대로 삶의 리듬이 있다. 조금 덜 서두르고, 덜 비교하고, 덜 쫓기며, 필요하다면 삶의 안전장치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적정한 속도로 맞추어야지
당신은 고유한 사람이니까. 우리는 피는 시기에 관계없이 모두 아름다우며, 늦게 피는 것 마저 자신의 고유함이 있다. 자신만의 보폭으로 걷다 보면 언젠가 결실에 필요한 적산온도에 다다르게 된다. 자신만의 속도나 온도가 있는 것이니까 서두른다고 될 일인가? 고유의 색깔대로 늦어도 그만 빨라도 그만, 스스로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을 테니까. 개개인의 그런 고유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공동체 생활도 함께 양립(兩立)되어야...
세상은 제 각각이다 보니 갈등도 평온도 공존한다. 사람마다 이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 다르겠지. 주어진 현실 상황도 변수도 있기 마련, 어째튼 여기서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소중할 때가 많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발단도 대체로 외부 보다 내부로 부터 일어나기 쉽다. 가까이 있기 때문에 문제도 일으키기 쉽지만, 반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한발 더 일찍 대처하기 쉽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들이 모양도 성격도 특징도 다 똑 같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고 갈등도 아예 없을 것이다. 항상 그렇다면 뻔한 맛에, 또 예측 가능한 루틴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세상에 물리적 논리적 원리가 그렇다. 밀도도 온도도 그렇고 압력도 강에서 약으로 흐르기 마련이고, 이런 에너지 차가 있어야, 또 다른 점이 있어야 뭔가 흐름이 발생한다. 발전이나 성장도 그렇고, 삶의 기쁨도 정적일 때 보다 동적일 때 나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가까이 마주하다 보면 부딪칠 일도 종종 일어난다. 그럴 경우에 직설적인 대처 보다 애둘러 부드러운 방법이나 표현이 낫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또 더 잘 보이려고 노골적인 아첨이나 립서비스는 때에 따라 아니하니 못한 경우도 있다. 오히러 재치있는 위트나 순발력으로 가벼운 칭찬이 상황반전에 유리하지 않을까? 공동체에 모인 사람들 사이 서로 온도차가 있기 때문이다.
기다리기 보다 먼저 다가가는 게 좋고, 적절한 역활도 자청하는게 좋을 때도 있다. 화제의 중심에 서 있기 마련이고 에너지가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서기를 좋아하는 것도 꼴볼견일 수 있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심리적으로 단점이 더 돋보이기 쉽다. 이런 점만 쳐다보면 스스로 힘들어 지는 게 뻔하다. 어짜피 같이 가야하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의 장점만 보고 생활하는 게 더 편하다. 자신만의 속도나 온도가 있으니까 그 차이를 줄일테니...
사람마다 삶의 성숙도 차이가 있는데 속도, 모양, 빛깔, 향기가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는가? 개체가 완전히 다른데... 하여튼 나 부터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더 깔끔해 보이지 않은지? 개개인의 영역에서는 앵행도리 뜻대로, 공동체 생활에서는 인향만리(人香萬里) 의미대로, 모두 존중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쫓아 가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다 같은 맥락으로 교차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좋은 향기를 품고 있지 않은가?
*키워드: 앵행도리(櫻杏桃梨), 적산온도(積算溫度), 인향만리(人香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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