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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필/삶

세상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

by 眞草 권영수 2022. 5. 29.

"세상 내 마음대로 못살아"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를, 사회생활을 수십여년간 오래 하다보면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 우수갯 소리로 이런 말을 종종 듣기도 하고 할 때도 있다. 조직마다 지향점이 명확하고 이해관계로 얽혀져 있는 직장생활에서는 사안에 따라 최선책에 이르지 못할 경우 갈등을 야기하기 보다 아예 양보를 하거나 배려 차원에서 차선책을 찾아 합리적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것 같다.

 

젊어서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거나 세상을 열심히 살수록 자신감 충만과 정신력으로 잔뜩 무장되는 듯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가져보았으라 본다. 사회로 첫발 내딛자 학교에서 배운 것을 현실세계에서 스스로 적용, 또한 실현해 보고 어설프게나마 성과를 좀 내니 그런지 몰라도 어쩌면 세상을 모를수록 한번 더 자신감으로 가득해진다. 그러나 경험이 쌓일수록 깊이를 더할수록 세상을 조금 더 알수록 주변변수들을 고려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고, 또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힐수록 세상 내 마음대로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세상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 인간은 나만의 자유, 나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사는 협력, 의존, 배려, 공조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야하는 롱런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마음대로 산다는 것은 모두 개인적이라 하지만 진정 인생을 잘 사는 강력한 비결은 세상과의 지혜로운 상호작용에 근간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원하는 '내 마음대로' 식은 스스로 왕따나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또한 자기 인생을 처음부터 자신의 뜻대로 펼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품이 원래 너무 착하거나 용기가 없어서 일텐데, 소위 '착한 사람 증후군'이라고 너무 착하다보니 매사에 남의 눈치를 살피거나 혹시나 타인에게 피해가 갈까 봐 처신을 자제하고 다른 사람 기준에 맞추다보니 그렇다. 또 한 부류는 용기가 부족하다보니 뭔가를 결정할 때 주변 의견을 들어야 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 최종결정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나를 타인과 조율하는 과정이나 일이 곧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몸담은 조직의 목표나 타인의 존재 때문이다. 인내심, 성숙함, 타인을 존중해서 선순환 구조로 가도록 자세를 취해야 한다. 세상일이 시간적 공간적 정서적으로 넒히다 보면 얽히고 설키고 더우기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가 흔히 벌어진다. 양파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속살은 계속 나온다. 인간사의 묘한 원리이기도 하다. 이게 해야할 일이고 해결하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는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일처리라도 해야지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되겠나"식의 얘기도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많이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도대로 꿈을 펼치면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본다. 반면 개인적 차원의 자유가 있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싶은 대로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것처럼 바램이 있다. 나 역시 내 맘대로 살고 싶다. 직장이나 사회에서 내 뜻대로 성과를 내고 싶고, 일도 하기싫을 때 푹쉬고, 여행하고 싶을 때 가고, 은둔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도 보면서 책도 읽고 이 모두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생각만 해본다. 소신대로 살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소신대로 살려면 역설적으로 소신이 없어도 되는 삶이라 즉 아쉬울 것이 없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사람이어야겠지.

 

나도 불변의 영원함을 동경하는 사람들의 범주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거기에 머물려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나 사람 마음이 갈대와도 같다는 걸 잘 알기에 변하지않는 내 마음처럼 상대의 마음도 똑 같아지길 바래왔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게 내 마음대로 되지않는다는 걸 경험상 너무 잘 알고 있다. 이웃이나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펼칠 수 있는 여지도 공간도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로부터 스스로 상처도 덜받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시대의 심노숭의 자저실기(自著實紀)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이와 연계해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나이들수록 마음대로 뜻대로 안되는 것이 많을 수밖에 그런지 몰라도 다섯 가지 형벌(五刑)에 대해 논한 대목이 흥미롭다. 즉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 않으니 목형(目刑),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없으니 치형(齒刑), 걸어갈 다리에 힘이 없으니 각형(脚刑), 귀가 들어도 잘못들으니 이형(耳刑), 그리고 정력이 떨어지니 궁형(宮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생각을 한번 바꿔보면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잘 보이지 않으니 나쁜 점을 잘 보지못하고, 단단한 것을 씹을 수 없으니 연한 것을 먹으니 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다리에 힘이 없으니 앉아서 힘을 아낄 수가 있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나쁜 소문을 듣지 않아 좋고, 여색을 보고도 요동치지 않으니 패가망신 당할 일이 없다. 이를 다섯 가지 즐거움 오락(五樂)이라 하였다.

 

사고를 좀더 유연하게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들여다 본다면 나이에서 오는 신체적 노화에 따른 불편도 어떤 의미에서 또다른 은혜이자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오형(五刑) 대신 오락(五樂)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웬지 인간적으로 더 성숙해 보이는 듯하다. 젊어서나 중장년에서나 나이들수록 결국 순리대로 돌아가는 세상이치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인생지사에도 매 마찬가지인 듯하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해서 우리에게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삶으로, 아무리 작은 구덩이라도 메워가는 삶이고, 그래서 물과 같은 그런 삶을 의미하므로 우리 세상살이와 연결지어 되짚어 볼 수 있다. "세상 내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 라고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당황해 하거나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줄기 흐름 처럼 세상일이 모두 제 위치를 찾아가려는 순리로 상선약수라는 말이 나온 듯하고, 세상일도 매 마찬가지 만사형통해 질 것이라 본다. 이것은 결국 역설적으로 '세상 내 마음대로 살 수 있어'로 모두 지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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