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지인이 나더러 권 선비라고 애칭으로 자주 불러주곤 한다. 그분은 가볍게 또는 예의상 불러주는 호칭이겠지만, 듣기 좋은 말이라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들을 자격이 있나 반문을 해보기도 한다.
요즘같이 혼탁한 사회에서는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선비 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 사회적 공인으로 살아오면서 스스로 이렇게 살아 왔는지 또 그렇게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을 일깨워 주는 문장이다.
문선악부(文選樂府)의 고사 4수 중의 군자행(君子行)에서 나오는 말이다. ‘외밭에서 벗어진 신발을 다시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 머리에 쓴 관을 고쳐 쓰지 말라'라는 뜻으로 불필요한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사지 말라는 의미이다.
물론 어떤 일을 직접 집행하는 행정가는 아니라지만, 대학에서도 당연히 통용되고 적용해야하는 말이다. 강의 연구 학생지도 외에 공공기관으로 학교의 업무도 그렇거나와, 교수로서 여러 행위나 사회적 봉사에서도 여기에 해당되고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알아야 면장 한다.’속담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정기관의 면 단위 수장인 면장(面長)인 줄 알고 있으나, 사실 지식이 있어야 벽(담장)을 면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면장(免墻 면할 면, 담장 장)을 일컫는다. 이러한 면장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덕목으로 여기에 시대적 상식이 있어야 하고 선비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선비라면 매미가 지니는 五德을 유념해 보았다. 오덕의 첫째 덕목은 문(文)이다. 머리에 홈처럼 파인 줄이 있어 마치 선비의 갓끈처럼 보인다. 두번째는 맑을 청(淸)으로 나무의 수액을 먹고 자라서 맑다. 세번째는 염(廉)으로 과일 나무에 앉아도 그렇고 다른 곡식도 축내지 않는다. 넷째는 검(儉)으로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아 검소하다. 다섯째는 신(信)으로 계절에 꼭 맞추어서 오고 가니 믿음이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로서는 현직에서 모두 물러나야 할 때가 멀지않아 곧 닥아 온다. 계급장이나 양반의 탈을 벗어 던지고 갓끈도 풀어 제칠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몸이 지칠 때 나무 그늘 밑에서 갓끈을 풀어 놓고 바람을 쐬어 가는 것도 요즘 더위를 식히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서 선비의 오덕을 음미해 마음을 정리 정돈해 보는 것도 이를 잘 실천하는 길이다.
소속 기관장도 다니는 교회 담임목사도 젊은 분이다. 또한 외부기관에 전문가로 초빙 받아 심사나 평가를 나갈 기회에 가보면 먼저 위원회를 구성하게 되는 데, 나더러 위원장을 맡으라고 권유한다. 호선에 의해 제일 연장자라서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원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뜩 발견하곤 한다.
앞으로 남아있을 현직은 성숙한 그 무게감만큼이나 중심을 잡아주는 균형추 역할로 하나 둘 발자취가 남겨질 것이다. 시간이 흘러 갓끈을 풀어 제처 삶의 무게도 마음의 무게도 내려 놓을 때 편안한 스탠스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뜻을 고상하게 가지며, 배움을 돈독하게 하며, 예절을 밝히며, 의리를 지니며, 청렴을 긍지하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으로 또 세상사에 급급해 하지 않는다는 이런 것이 선비의 의미이다. 이러한 고귀함에 옥의 티를 묻히지 않도록 현실의 갓끈을 고쳐 메고 삶의 맵시도 다듬어 마무리도 잘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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