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사랑하는 친구야! 내일 당장 여보당신 불러 봐! 왠 뚱딴지 같은 소리?
여보 당신! 남자가 부인을 여보(如寶)라 불러야 하나? 같을여 보배보 해서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이라 한다. 부인을 아끼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자는 남편을 당신(當身)이라 불러야 하나? 당신은 마땅할 당 몸신해서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바로 내 몸과 같은 사람이라 한다. 남편을 당연히 내 몸처럼 여겨 보살피고 존경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래의 뜻은 이렇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있던 없던 뒤죽박죽 된 게 요즈음 모습이라 한다. 부부에게 이 소중한 의미를 새기면서,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여보' 와 '당신' 이란 말을 사용하면 좋으련만, 왠지 아직도 이렇게 불러보지 못하고 사는 게 대부분이란다. 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이렇게 노력하리라.
부부란 자기들만의 일기가 있고, 대체로 삶에 대해 이렇다고 한다. 20대는 철없이 멋 모르고 사는 세대라 하고, 30대는 신바람나게 열정적으로 사는 세대라 한다. 40대는 조금 지칠 때가 되어 마지못해서 사는 세대라 하고, 50대는 자식을 어느 정도 키워 함께한 삶도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녹여 서로를 인정하면서 사는 세대라 한다. 60대는 같이 산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로 서로 고마워하면서 사는 세대라 하고, 70대는 어느 누구하나 인정해 주지 않고 기댈 데 없어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세대라고 한다. 나이 들수록 가족도 중요하지만, 마음 한 구석 채워 줄 친구도 중요하리라.
해서, ‘좋은 글 중’에서 우리 친구의 노래를 불러 보련다. 친구야 나의 사랑하는 친구야! 친구야! 우리가 살아봐야 얼마나 살 수 있겠는가? 바둥거리면서 살아간들 무엇이 남겠으며, 불만과 비판으로 살아간들 무엇 하겠는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남을 얼마나 비판하며 살아왔고, 남으로 부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판을 받았을지 생각해 보았는가? 왜 ‘우리’라는 표현을 하며 왜 ‘친구’라는 단어를 쓰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그저 스치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가 아니던가?
편견과 오해와 시기와 질투가 왜 만들어지고 생겨나는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하지 않겠나 친분을 내세우면서도 내 입장만을 먼저 고집하지는 않았는지? 우정을 거론하면서도 본의 아니게 내 이익을 먼저 생각한건 아닌지? 가깝다는 친구가 왠지 서운한 모습을 보였다 하여 이해하기보다는 고집을 먼저 앞세워 친구를 원망하고 탓하지는 않았는지 말일세
친구야! 소중히 생각할 친구야 우리도 벌써 중년이라네 아니, 중년을 넘어서고 있다네 감싸주는 것이 무엇인지? 위로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용기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실수와 잘못을 구분할 줄 알며 용서와 배려가 무엇인지? 바로 우리가 살아오면서 깨닫고 얻게 된 지식이 아니겠는가? 이젠 그 지식을 우리가 활용할 때가 아니겠는가?
친구야! 사랑하는 나의 친구야 이젠 우리도 한번 해 보는 것 도 좋지 않겠는가? 용서 못 할 일도 용서해 가며, 이해 못 할 일도 이해하려 하며, 배려하지 못할 오기가 생겨도 배려할 줄 아는 그런 우리가 되보지 않겠는가? 언젠가 우리 지금보다 나이 더 들어서 오늘의 그날을 돌아 봤을 때 “정말 그 친구를 잊을 수 없어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네" 라며 가물되는 추억과 기억을 살려가며 서로를 그려볼 수 있는 우리가 되야하지 않겠는가?
2011. 2. 7. 권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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