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까지 했을까 미친 듯이 흙수저가 가야하는 길이라면
고향친구들끼리 밴드에서 어릴적 시골 부모님의 얘기를 나누다 이런 푸념을 적어 보았다.
우리 집에서도 담배농사 정도는 했다. 밤새 장작불 피워 건조시키고, 담배조리 등 뒷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고교 때까지 시골서 지게일, 논밭갈이, 모내기, 농약분무기살포, 논밭메기, 모내기, 리어카로 농작물이동, 추수 및 타작 등 농사일을 안해 본 게 없다. 사실 이런 일이 쉽지는 않고 공부라는 것은 완전히 뒷전이라 너무 싫었다. 그래서 시골서 뛰쳐나왔던 것 같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 할 줄 모른다.’ 시골서 고교를 졸업한 후 도회지로 처음 나와 받은 문화적 충격이 너무 심해 정체성 혼란으로 빠져 들었다. 시골에서 볼 수 없던 빌딩들이며, 거리의 많은 차량들과 사람들, 수많은 학교와 대학들, 출퇴근 시간대에 넥타이 부대 등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앞으로 도대체 뭘 할 수가 있을까? 고민에다 불안하기까지 했다.
공부를 첫 단추로 끼워 보았다. 국 영 수 과학 등 기초 실력이 전무 한 상태라 이를 어쩌나. 이 중에 영어가 제일 문제로 고교 저학년들이 다니는 영어 학원에 등록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단어 외우고, 학원 듣고, 예습 복습하고, 독해와 문장을 반복해서 보고 쓰고, 영어공부를 1년 해도 시원치가 않아 첫 단추를 끼우는데 너무 힘이 든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중간에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2년간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죽어라 열공한 끝에 한번 해보자는 느낌이 든다. 다행히도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지방의 한 대학에서 과수석도 여러 번 해보고, 장학금도 매번 타고, 자격증도 몇 개 따고, 그리고 편입시험을 거쳐 드디어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공부를 미친 듯이 해야지” 하는 생각밖에는 없다. 꿈에 그리던 서울 입성이다. 이른 새벽반에 영어학원을 가던지, 아니면 대학도서관으로 가 직접 문 열어 열람실을 맨 먼저 차지하고, 수업 듣고, 도시락으로 점심 저녁 떼우고, 밤늦도록 공부한 후에 맨 나중에 도서관을 나온다. 고향집에도 거의 안가고, 친구와도 단절한 채 주말 공휴일 모두 무시하고 이런 대학생활을 365일 반복한다. 아니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운명이라 악에 받쳐 물러설 수가 없다.
“돈 없이 공부하는 게 죄인가” 송구스런 얘기이지만 학원에도 대부분 도강을 한다. 혹시나 수강증 검사하는 날이면 돌아 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내 걸음으로 와서 이래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위안이다. 밤늦게 들어와 자취생활로 밥 짓고 반찬 두 가지 해서, 다음날 점심 저녁 도시락 두 개를 싸서 보온밥통에 넣어 둔 채 잠을 청한다.
“세상에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놈이 있을까” 좀 건방진 생각도 해보았다. 매년 여름이면 도서관에 장시간 오래 앉이 있어 엉덩이에 물집이 생겨나 괴롭힐 정도로 집중하였다. 명문대학으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이를 악물고 전공 교과와 대학생들이 본다는 영어책도 거의 다 보았고, 코리아 헤럴드 영자신문과 타임지를 듣기 위해서 새벽반 학원에 계속 다녔다.
학수고대하던 서울의 명문대학 대학원에 드디어 합격이다. 정말 시골촌놈이 맞는지 의심도 해 본다. 사실 출신고교에서 역사상 단 한명도 없었을 것이고, 전국에서도 극히 드문 일일 것이다. 어릴 때 공부도 못했던 작은 놈이 서울서 명문대를 다니다니 의심하는 친구도 있었다. 정기구독하던 타임지를 그 친구가 우연히 볼 기회가 있었다. 쌓아 둔 모든 타임지의 전 페이지에 공부한 흔적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 역역했다.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온지도 근 6년의 세월이 흘렀다. 밤늦게 캠퍼스를 걸어 나오면서 오늘 하루도 유익하게 보냈구나 하는 벅찬 가슴으로 끌어올라 피와 살이 된다는 느낌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련의 과정이다.
“그래 교수가 되자” 대학원을 졸업해서 당시 대학생들이 제일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의 연구소에 당당히 입사해서 연구원이 되었다. 첨단산업 분야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우연히 인근 대학에 겸임교수로 추천을 받아 출강할 기회가 주어졌다. 연구실적과 일주일에 2~3번 야간에 출강하면서 강의 경력도 쌓아 교수로서 요건을 갖추었기에 대학으로 옮길 수가 있었다.
흙수저가 가야하는 길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까지 했을까” 그 세월 지금도 스스로 가끔 놀란다. 고교시절까지 시골서 농사짓던 놈이 서울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의 연구원을 거쳐 박사까지 받고 대학교수가 되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다 지나간 옛 얘기거리이다. 그래도 우리는 시골정서가 자신도 모르게 몸에 베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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