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의 세계에서는 꿈이 없단 말인가? 성장통
고향이라는 곳,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별 감응이 없겠지만 시골출신 출향인 사람들에게는 남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초등학교 동창회 행사나 대도시에서의 출향 인사들의 향우회 같은 모임의 활성화를 보더라도 더욱 그렇다. 어렸을 적 순수한 자연속 그들만의 제한된 세계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성장후 성인이 되어서도 언제나 어머니의 품과 같은 향수로 늘 그리운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대부분 베이비부머들의 삶이 그랬듯이 그 당시 시골의 경우 정보에 어둡거나 아예 미치지 못할 정도로 심지어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면서 학교를 다녔다. 주변은 온통 오지로 첩첩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여, 사람들이 일구어 낸 농토에서 자신의 삶과 생업을 여기서 구해야 했고, 아이들조차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손이 부족하고 먹거리를 위해 농사일에 모두 동원되어 부모를 도와야만 하는 상황이다.
우리 조상들이나 부모님도 마찬가지, 대부분 농사 일로 생업을 꾸려 가셨다. 그 당시에는 산아제한의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라 동네 대부분 가구들은 적어도 다섯 명 이상 많게는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을 꾸려 먹여 살려야 만 했다. 말 그대로 모든게 부족해 먹고살기 힘들었던 고난의 시대로 기억된다. 물리적 한계도 있었지만 시대적 실상이 그러했고 당연한 현실이었다.
많은 식구와 함께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이 잘 안 되는 가난의 늪, 미래도 그렇고 더 넓은 세상을 모른 채 무지와 단조로운 문화와 관습, 사방이 산으로 둘려 쌓여 문명의 혜택이 주어지지 않은 땅, 논리적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삶의 영역, 이들 모두의 요소들 가운데 아이들의 교육 또한 뒷전으로 밀리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고등학교까지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게 생각해야만 했던 시절, 대학을 모르는 것은 물론 꿈도 못 꾸는 먼 나라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이토록 척박한 환경이라 우리를 힘겹게 한 면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원시족이 그러했듯이 야생에서 살아남기를 가르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정신세계를 모질게 단련해 준 말그대로 성장통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라 연관지어 본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의 알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면 당신은 알 속에서 죽고 만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을 깨부수어야 새 생명으로 태어난다. 닭이 보다 더 멀리 날기 위해서 자세를 바짝 더 움츠렸다가 온 힘을 다해 펼쳐야 더 멀리 날라 갈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려면 껍질을 벗겨내고 허물을 걷어내는 고통을 참아야, 새로운 개체로 살아나는 자생의 방법을 가르치고 그런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약자로서 부당하고 불합리한 위기 탈출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과 선택을 가르쳐 준다. 또한 인간세상을 조금 이해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도덕적 자립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위기도 여러 차례 찾아 왔겠지만 길고 험난한 세파에 빠져들지 않고 굳건히 살아 온 삶이 바로 우리 모습을 반영하는 듯해 '새의 알은 세계'가 왠지 친근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지금껏 그것 때문에 창피하다거나, 그것이 인생살이에 장애물로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인심이 많고 정감어린 시골적인 정서가 문화적 감성을 길러 장점일 수도 있고, 그래서 시골 태생을 내세울 때도 있다. 아마 자기 부모가 못 배우고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무시하거나 창피해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면 그 세상은 분명 잘못된 일 것이다. 흔히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보니 완벽을 기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완벽하기보다는 약간의 빈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접근하기가 쉽다고들 한다. 어찌 보면 이렇게 사회적 약자로 출발해 시작점이 시골뜨기였던 셈이다. 그래서 오히러 꿈을 키울 수 있었고, 꿈을 먹고 살수 있었다.
엄청난 문화적 충격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설상가상(雪上加霜), 사세부득(事勢不得), 이는 힘이 달려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일 때 떠올리는 말이다. 사람한테는 죽음을 빼 놓고는 빠져 나갈 구멍은 있다는 말이 있다. 무슨 수를 쓰긴 써야 하는 데 수가 얼른 보이지를 않아 어떤 국면타개(局面打開)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속담처럼, 무식한 사람이 멋모르고 저지른다고 시골 탈출과 함께 동시에 대도시인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어야만 한다. 처음 그곳으로 발을 옮기자말자 말로만 듣던 도시의 규모와 외관, 넘쳐나는 교통, 다양한 사람, 여러 종류의 학교와 대학, 시골과 도시의 차이, 의식의 개념 설정, 다양성에서 오는 혼돈, 문화의 차이와 정체성의 충돌 등등으로 인해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홀로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엄청난 문화적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시골에서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주어진 환경이 너무 취약해서일까 학업에 있어서도 기초가 부족했던, 아니 전혀 없었다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우리로서는 어설프고 허울 좋은 학생이었지만, 실력도 형편없었을 뿐더러 무지로 버려져 있던 가여운 처지라 어떻게 해야할지?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도와주거나 함께해 줄 사람도 없으니 그야말로 외톨이 신세라는 말이 더 맞다. 다양성과 함께 혼돈의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인 셈이다. 부모님을 위해서나 무엇보다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정신을 가다듬고 또 바짝 차려야 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주어진 현실을 엄격히 받아들이고, 선택은 바로 한 가지, 오직 학업으로 승부해야겠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스스로 인식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를 악 물고 절박한 현실을 처절하게 받아들이면서, 책을 붙들고 또 잡으려 했지만 야생에 가까웠던 우리로서는 책 읽는 습관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도전은 그리 쉽지 않거니와 개념 설정부터 고난의 여정은 계속 이어져 갔다. 상황이 힘들고 모질게 느껴질 때 마다 포기해 버릴까? 꼭 이렇게 헤야 하는지 반문도 여러번 해보기도 하였다. 아니면 주변으로부터 달콤한 유혹도 여러 번 찾아오기도 하였다. 무엇이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우습게도 오기로 작동했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도 책을 붙들고 잡으려는 노력은 계속해 시간은 그냥 흘러갔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엇인가? 문틈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빛처럼 어렴풋하게나마 희미한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학기말이 끝나고 성적이 그 많은 학생들 가운데 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해가 잘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자기자포할 정도로 절박한 궁지에 몰렸던 처지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테지. 순간 눈물이 스스로 날 정도로 놀라웠던 걸로 기억 된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한테 그나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조금 얻었다는 게 수확이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고 좋은 기회로 작용한 것 같았다. 이런 동력을 받아 계속 피눈물나는 노력한 끝에 전체수석으로 졸업까지 했으니 말이다. 얼마나 크나 큰 전환점이었는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촌놈 서울 가더니 출세했다. "하늘은 돕는 자를 스스로 돕는다."
꿈이 있어 행복하다. 기초교과가 약해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학원가를 다니면서 영어, 수학 공부를 같이 해야만 했던 절박한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되었다. 무엇보다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영어공부로, 해도 해도 앞이 보이지 않아 포기해야하나 하는 먹구름이 여러 번 있었다. 이것이 나를 공포 분위기에 몰아넣곤 하였다.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
위로는 한 가지 분명히 있었다. 나의 미래, 희망의 등불을 누가 켜줄 것인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미력하지만 그 동력이 내 몸에 살짝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일반 학원, 도서관, 책 이것이 나의 전부였고 삶의 전부였다. 이를 위해 휴일은 물론 유흥, 여가, 놀이, 낭비, 소비 같은 것은 내 사전에는 절대 없다고 대못을 박고 다시 이를 악 물었다. 밝아 오는 미래, 희망을 보리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의지와 뜻이 있는 자에게 서울의 한 대학시험에 운 좋게 합격하였다. 드디어 기회의 땅이자 약속의 땅 서울로의 입성은 인생에 있어 또다른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꿈에도 그리던 스스로 인 서울 하였으니 말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늘은 돕는 자를 스스로 돕는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이란 문구가 이때 사용하는 말로 들렸다. 뜻이 있으면 하느님이 도운 것이라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실감하였다. ‘촌놈 서울 가더니 출세했다.’ 흔히 말하는 어느 촌부의 말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나도 그래야지 온전한 서울사람으로 거듭 태어나야지 각오를 다져 보았다.
사람에게는 한평생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기회는 철저한 준비와 행운이 만날 때 생긴다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아직 기회는 무수히 더 남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준비하고 때를 기다리며 꿈꾸면 행운의 여신을 만나 기회는 곧 결실을 만들어 주겠지.
기회의 신, '카이로스 대머리 동상' 이야기 처럼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Kairos)는 ‘상대적인 시간의 신’이자 ‘기회의 신’이다. 카이로스 동상 앞의 새겨진 문구와 자세한 관찰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고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내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다.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보통 임계점이라 하면 ’액체와 기체가 구분될 수 있는 최대의 온도-압력의 한계‘로 정의된다. 이는 변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인 한계점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인생에서 임계점이란 것이 있을 것이다. 넘어서야 하는 것, 넘지 못하면 결코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임계점이 분명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베이비부머 세대로 태어나 대학재학 시절 2학년 때 10.26을, 3학년 때 5.18을 격어야 하는 역사의 격동기에 걸쳐 있긴 했으나, 여기에 흔들릴 필요는 없이 독학이나 다름없이 줄곧 도서관을 찾아다녔다. 나름대로 어느 정도 임계점을 뛰어넘어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가 이를 막겠는가. 미래로 희망의 길로 갈 길을 간다. 가고야 말 것이다. 이 각오 하나 뿐이다.
어느 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부러워한다던 소위 명문 대학교의 대학원에 다니는 선배 한사람(현재 대학교수)이 찾아와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학문의 세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러 주었는데, 그날따라 그 선배의 모습이 그렇게 폼 나 보였고 그분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저 선배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세계 주인공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렇게 꿈을 심어 주었다.
명문 대학교로 진학해야지. 안된다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반문해 보았다. 수학과 전공 교과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전공이 아닌 영어로 심각하게 느껴졌고 힘든 압박이었고 고통이었다. 전공 공부에서 원서 읽기에 너무 벅차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고, 무엇보다 영어에 대해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건방진 모습, 몸이 망가질 정도로 처절하게 공부 해봤니?
서울 시청 근처에 위치한 타임지를 가르치는 영어 학원을 찾았고, 처음에 수위조절이 필요했다. 국내 영자신문을 구독하고, 이에 더해 토플, 토익, 단어, 문법, 독해 등 대학생들이 읽는다는 여러 권의 영어책을 모두 읽어 보는 강행군을 계속해야 했다. 뉴욕 타임지를 공부하려고 아침 7시에 하는 새벽반을 계속 수강했는데 이색적인 경험이 있었다. 겨울에 새벽반을 수강하려면 굉장히 캄캄하고, 집에서 나오려면 늦어도 5시 전에는 일어나거나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강생은 직장인과 대학생외에, 중년 아주머니로 보이는 몇 분도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 내 눈에 번쩍 들어왔다.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일까? 그 열정, 이 모습이 나에겐 충격으로 와 닿았다. 나를 더욱 담금질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셈이다.
사실 공부를 하겠다는데 가난이 무슨 죄인가? 반문도 여러 번 해 보았다.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서 마음내키지는 않았지만 학원에서 몰래 수강을 많이 하면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나쁘다면 나중에 그 죄 값을 달게 받겠다는 각오로 영어 공부를 하러 다녔다. 겨울에 새벽시간의 어두움 속을 헤쳐 지하철을 타고 30분 이상 달려 학원에 도착하였지만, 한 달에 몇 번은 수강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날은 입구에서 수강증을 검사하는 날이다. 수강증이 없으니 듣고 싶은 새벽반 영어강의에 못 들어가고 발길 돌려야 하는 이 심정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괜찮아. 마음 다스리고 미래로 희망으로 현실세계 주인공으로 그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학원가, 도서관, 책이 나의 전부였고 삶의 전체였다. 매일 같이 대학 도서관에서 주인 노릇한 것도 당연시 되었고 예사처럼 되어 버렸다.
새벽 일찍 학교로 제일 먼저 나와 경비실 아저씨 대신 도서관 문을 직접 열었고, 전날 밤에 손수 준비한 도시락 두 개로 가방속에 넣고, 행여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볼까봐 점심 저녁 두 끼를 도서관 뒤 칸에 쪼그리고 앉아 매일같이 대충 때운다. 낡은 책가방, 허름하지만 깔끔한 차림으로 색 바랜 단벌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스럽지 않은 것은 책과 영어사전 뿐일 것이다.
매년 여름만 되면 도서관에 오래 앉아 있어 엉덩이에 물집이 생겨날 정도로 매우 괴롭혔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모든 것을 뭍은 가운데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도서관을 나가는 모습에, 내 마음도 몸도 든든해지고 피와 살이 된다는 걸 느꼈다. 어찌 보면 건방진 생각도 들었다. 어느 명문대생이나 이 세상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공부가 몸속으로 흘러 피와 살이 된다는 사실을 느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이것이 나를 지키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를 통해 나는 행복했다.
결국, 자랑스러워 보였던 선배 한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명문 대학교에 합격증을 받아 들었다.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행복했다. 인생에 이런 날이 몇 번 더 올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왔다. 고난의 연속으로 한때 버려졌던 시골 촌놈, 결코 순탄하지 않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카이로스 동상 이야기에서 ‘기회의 신’처럼 한계점을 또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어 왔다. 이 축복이 나에게 오다니 세상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내 생애 처음 느껴 본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시골로 내려가 부모님께 합격을 전해드렸더니 한동안 아무런 말씀없이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기만 하셨다. 아마도 내가 느낀 것처럼, 당신도 마음속 똑 같은 감정과 행복감이 마음속에 남아 계셨으리라 본다. 더욱이 그 당시 시골의 잣대로 보자면, 그 오지에서 고교를 나와 명문 대학교를 들어간 선배나 동료는 전무하였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꿈은 만들어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싱을 향한 첫걸음, 꿈은 이루어진다.
사회입문 초년생으로 거듭된 도전이기를 바란다. 당시에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일류 직장으로, 대기업 연구소로 첫 직장을 잡아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그 단맛을 보았고, 남들이 부럽다고 하는 행복한 일터이기도 했다.
생애 첫 직장이기도 해 흥분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사회 첫 출발을 이렇게 시작한다. 학생이 아닌 프로로 무장한 직장인으로, 잘 절제된 스타일의 직장문화, 스스로 노력과 현실참여로 발생하는 수입, 철저한 계획과 목표관리로 짜여 진 업무추진 그리고 결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과, 연구소라서 그런지 첨단 장비이며 생소한 실험실과 환경 등 모두 이색적인 환경에서 새롭게 도전할 만한 충분히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젊음을 마음껏 도전해 보고 학교에서 배운 자연과학 지식을 실제 구현해 보는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하고, 이 세상에 젊은 공학도로서 꿈을 실현할 때는 그 성취감과 가치 있는 일을 해 보았다는 자부심으로 행복해 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용하게도 운이 좋았는지 연구소의 추천으로 근처에 있는 대학에 겸임교수로 출강의 기회도 잡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가르치는 기쁨도 처음으로 경험해 보았다.
우리에게 매일 다가오는 이 기회를 잡으려면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 대머리 동상 이야기를 떠 올려보면 된다. 기회가 다가왔을 때, 정확한 판단과 냉철한 결단으로 민첩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려면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면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하는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차세대를 이끌어갈 주자로 커가기를 기대해 본다.
어느 정도 위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쏟아지는 잠을 몰아내며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다시 다독이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계속되는 문제풀이, 중간 학기말 고사에서 자신이 계획했던 목표를 이룰 수 있는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는지, 때때로 점검하면서 스스로 한계로 제한하지 말고, 그것을 뛰어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들에게는 분명히 좋은 기회와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피그말리온 효과, 교수가 되기까지
평소, 대학에서 자리 잡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해야겠다는 희망을 안고 살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공부를 계속 이어갔고, 드디어 너무나도 값지고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의 연구업적, 강의경력, 연구소에서의 연구개발 실무경력이 밑바탕이 돼 그 후 우연하게 찾아 온 기회에 지방의 한 대학에 교수로 임용될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아니 꿈만 같았던 목표, 평생에 그리던 희망을 품고 살았던 그 자리를 손에 쥐어 넣었다.
평소에 그렇게도 하고 싶었기에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해서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내야지 각오도 해 본다. 전공한 학문분야에서 강의 연구 봉사를 교수 본연의 의무로 생각하면서 이를 실천에 옮겨 보았다. 현실참여라는 장을 토대로 나름대로 품격을 세워 이 세상에 또 다른 가치를 더할 기회로 마음껏 해보려고 했다. 교육자로 학자로 거듭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피그말리온(Pygmali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였다. 그는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 속 여자들은 모두 결점 투성이라 생각하여 평생 독신으로 살려고 결심했다.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조각상이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보다가 마침내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신에게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어찌나 간절히 원했던지 그에 감동한 신은 결국 그의 부탁을 들어 주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뭔가를 향한 집요한 기대나 예측이 어떤 영향을 주도록 해서 결국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성공할 것이다. 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성공확률이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정신세계에서 스스로 잠재의식을 움직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 피그말리온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순진하게도 세상에 뭘 믿고 그렇게도 꿈을 꾸었는지. 역시나 스스로 시골촌놈으로 자청하고 있었나 보다.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련다.
아무리 쓸모없는 열매도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다음세대의 시작을 기약한다는 어느 유명한 교육자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한평생을 몸 바쳐 교육을 한 이 분은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와도 젊은이의 소중함을 알았기에, 그 이름 하나하나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만날 때마다 귀하게 불러 주었다고 한다.
닭이 알을 낳아 생성한 계란은 둘 중에 한 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운명을 거친다. 외부에서 인위적인 힘을 가해 껍질을 깨고 나면 이는 후라이 반찬이나 삶은 식용계란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런데, 어미 닭이 일정기간 동안 따스한 조건에 맞추어 온갖 정성을 다해 알을 품고 안아 부하를 하게 되면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난다. 교육도 마찬가지로 어미 닭이 정성으로 보살펴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게 하듯이, 인위적인 힘으로 밀어 붙이기보다는 학생을 품에 안아 보살피고 새로운 동기부여와 힘을 실어 주어 당당한 개체로 거듭나게 해, 이 세상에 가치를 더하게 하는 인재로 만드는 역할이라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잘난 아이 데려다 더 잘 가르쳐 훌륭한 젊은이로 키우는 것도 좋은 일이다. 기회에 밀린 아이 그리고 못난 아이 부족한 아이 데려다 몸과 마음으로 품고 감싸 믿음을 심어주어, 그 아이에게 인생전환의 계기가 마련된다면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먹잇감을 찾아 떼를 지어 뒤뚱뒤뚱 바다로 향하는 펭귄들은 물에 뛰어들기 직전 제자리에 서서 머뭇거린다. 바다표범이나 고래 같은 천적에 대해 잡혀 먹힐까봐 하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다에 뛰어 들어야만 원하는 먹이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왕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면 먼저 뛰어드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래야 먹잇감이 도망가기 전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무리 중 용기 있는 한 마리가 몸을 바다에 던지자 나머지 펭귄들도 그 뒤를 따라 모두 바다로 뛰어 든다. 제일 먼저 몸을 던진 ‘최초의 펭귄’(First Penguin)은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관용어로, 불확실하지만 일단 뭔가를 저질러 보는 것, 순간적인 직관이나 느낌으로 판단하고 뛰어 드는 것, 용기 있는 도전자를 일컫는 말이다.
나이든 사람은 대체로 의심이 많아 머뭇거리고, 아이들은 철이 없어 쉽게 뛰어 드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한번 의심해 보고 행동하는 최초의 펭귄처럼 진정한 젊은이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서울 테헤란로의 수많은 젊은 벤처가들, 이찬진, 안철수, 김택진, 손정의,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페이스 북을 만든 하버드 대학생들, 이들을 두고 최초의 펭귄들이라 할 수 있다.
고향과 친구들,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
고향 시골학교 동창회에 오랜 만에 참석해 보았다. 회장의 제청으로 기억하건 데 참으로 오랜만에 교가를 불러 보았다. 어린 시절, 아니 순진난만 했다 할까 그 시절 교정에서 거의 매일 같이 아무 생각 없이 불렀건만, 이 행사에 불러본 우리들의 교가 왠지 가슴 뭉클해져 벅찬 마음으로 불러보았고, 살아온 그 기나긴 세월 다시 뒤돌아 본 순간이었다. 분명 그 자리엔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보내며 물장구치며 놀던 강, 맑은 시냇물이 골짜기 굽이쳐 흘러내리는 강물처럼 오랫동안 돌고 돌아서 와본 우리들의 고향 땅이었다. 어린 시절로 잠시 돌아 가 있었고 우리 동기친구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모여 있었다.
마음은 항상 고향친구들과 함께 했던 소중한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지냈지만, 과거 몇 십년 동안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안은 채로 꼭 참석해야지 흥분된 마음으로 친구랑 함께 모임 장소에 갔다. 여러 동기들은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고 내 손을 모두가 꼭 붙잡아 주었다. 그 손에는 뭔가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편안한 고향의 마음, 소박한 마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향과 친구들,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았다.
분명히 그런 것 같다. 모두들 각자 살면서 어느 한 지역사회에 속해 생활하면서 여러 모임을 가 보았건만 어린 시절 함께 보낸 고향동기 모임만큼이나 마음 편히 참석할 수 있을까? 난 사실 과거 오랜 동안 연락 잘 안되었던 동기들 중 한사람에 속해 있었으리라. 항상 난 이점에 친구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자기 정립과 바쁘게 살아 온 현실 속, 고향 우리 친구들과는 과거 오랜 간 단절되어 왔지만, 근래 몇 년간 그 잃어버린 20~30년을 찾으려 고향 친구모임에 의도적으로 참석하려고 노력해 왔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 모습과 너무나도 변해버린 친구들의 모습, 생활문화와 정서의 차이, 세월의 흐름에 많이 뒤바뀐 외관 모습 못지않게 마음도 나누기에 어색한 면이 많이 있었고, 그 흔한 전화도 쉽게 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제는 그런 거부감이 하나 둘 없어지고, 마음 터놓고 서로 섞을 수 있는 우리 친구들이 분명 있으니 나이 조금 먹으면서 이게 행복이 아니겠는가? 10년 후의 모습, 우리는 어디를 가리요. 마음 나누는 친구 몇 있으면 난 행복하리라.
찬구들, ‘갈매기의 꿈’을 가지고 살았다.
부산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친구들이 그곳으로 우리를 초대한 모임에 참석하였다. 우리를 길러낸 고향과 함께한 동기들은 영원한 친구라는 아주 평범한 인식을 내게 더 일깨워 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친구의 모습에 내 스스로 감회가 남 다른 자리였던 게 틀림없었다. 한 나이 더 먹으면서 삶의 깊이를 더 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았다. 내 주변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즐거움이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친구들의 활기넙치는 삶의 모습을 확인하면서 나도 앞날을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그 자리엔 반가운 얼굴 그리운 얼굴 가릴 것 없이 모두 있었었다. 언제나 만나고 싶던 동기들과 모처럼 모여 밥 한 끼 하는 게 어찌 그렇게도 맛이 있었는지, 즐거움이었는지, 각자 살아가는 모습을 주고받으면서 그 한가운데 나도 푹 빠져 있었고 근래 격지 못했던 행복감 그 자체를 맛보았다. 흥분된 마음 만들기에 충분했다.
친구들은 청정해역으로 소문난 근사한 장소를 잡아 초청하였다. 하늘이 선사한 신선한 날씨, 철저한 준비 진행으로 마음을 사로잡은 솜씨, 잘 차려진 맛깔스런 향토음식을 차려 놓았다. 특히 그 지역에 꿈을 심고, 잘 안착해 열성적으로 살아가는 개개인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에 우리 친구들이 행복해 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들에게 책으로, 영화로 감동을 안겨 주었던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 주인공이 그랬듯이, 평범한 갈매기를 거부하고 독수리처럼 강하고 빠르게 날려고 연마해 2800m 상공을 나는 데 마침내 성공해 다른 갈매기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교훈으로 우리 모두 받아 들여졌다.
그들은 모임 후 떠나보내는 친구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했다는 김과 멸치로 포장해 준 선물 감사히 잘 받아왔다.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마음을 담아, 어렸을 때 매일같이 빠지지 않고 도시락 밑반찬으로 싸 주신 멸치볶음 생각을 잠시 떠 올리게 해, 우리는 그걸 먹고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선물로 당신들의 마음 잊지 않겠소. 친구들의 이런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한없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고마움을 느꼈고, 이 대목에서 나는 바보였다. 그래서 역시 시골 촌놈이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배우고 또 배우련다.
요즘 세상, 대체로 인생 팔십을 산다고 보고 통계에 의하면, 일하는 데 26년, 잠자는 데 24년, 먹는 데 6년, 사람을 기다리는 데 6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런데 웃는 데 보낸 시간은 고작 220시간뿐 이였다고 한다.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을 웃고 살까. 아이들은 하루에 150번 이상을 웃는 반면, 우리 어른들 특히 남자는 기껏해야 하루 15번 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매 마른 생활 속, 모처럼 친구와 환한 웃음으로 나눈 많은 시간들이 건강하게 몇 년 더 오래 살게 할 것이란 생각이 드니 말이다.
어느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 별거 있소. 사람은 대체로 직장과 사회에서 평균 30년을 세 단계로 일에 임 한다고 한다. 처음 10년은 열심히 배우면서 열정적이다. 다음 10년은 경험과 업적을 쌓아 간다. 마지막 10년은 노하우와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와 관록으로 성숙된 모습으로 일에 임한다고 하는 데, 하지만 건강이나 환경, 돌발변수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한다.
내 스스로 채우기에 급급해 내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 삶을 살아온 것 같아 늘 부담으로 작용했다. 해서,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머리를 본인만 위해 사용하기 보다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와 나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아갔으면 하는 게 원이요 그렇게 가도록 부모로서 돕는 게 내 우리 임무인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도전과 성취,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에 자식들을 통한 행복과 고마움, 주변 사람과 친구들에 대한 감사, 스스로 만감이 교차하면서 세상에 짐을 지고 사는 기분에 젖어 볼 필요가 가끔 있다.
인생 막바지를 살고 있는 경로당 노인들에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스러운 것 세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고 한다. 대부분 좀 더 참고 살걸, 좀 더 베풀고 살걸, 좀 더 즐기면서 살 걸이라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 보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배우고 또 배우련다.
세상사는 여러 곳에서 또 다른 꿈을 가르치고 있다.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옛날 속담이다. 이 말은 조금 유아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이처럼 적절한 말을 찾기도 쉽지 않다. 내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받아들이고, 손해를 볼 것 같으면 뿌리치는 아주 극단적인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늘 좋을 수도 없고, 언제나 나쁠 수도 없는 것이다. 아주 가까웠던 친구도 뜻하지 않은 계기로 해서 멀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과 좋은 관계가 맺어지는 일도 있다. 인간관계는 무난해야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한다. 이 말은 내 자신의 주장을 피하고 양보를 해야 한다는 뜻이고 야속하게 자기이득만을 챙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물질적인 손해만 없다면 어떠한 말이라도 해서 상대방을 추켜 세워줄 필요가 있다. 돈이 필요한 일이 아니니 마음껏 해 주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금전적인 손익이 개입된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이익은 삼키는 정도가 아니라 들이키는 것이고, 뱉을 때는 가볍게 내 뱉는 정도가 아니고 남의 그릇까지 부수어 버리는 경우도 보았다. 적어도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TV속 드라마에서 호화스럽게 살고 있는 회장 부부의 사이는 왜 원만하지 못할까? 몇 년 전 방영된 KBS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어머니가 회사를 경영하면서 잘 나가고 럭셔리한 저택에서 호화롭게 살 때, 아들이 좋아하는 며느리를 그렇게도 싫어하고 남편을 우습게 알고 팽개치는 모습에 구역질나는 모습이 있다. 나중에 회사가 부도나 어려워지자 남편 아들 며느리와 함께 화목 가정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망해 봐야 망하지 않는다.' 는 말씀처럼 좋은 교훈을 던져 주는 이야기이다.
인생이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는 10%의 사건과 그 일어나는 일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90%의 태도로 구성된다고 한다. 폐결핵에 걸려 24세 때부터 13년 간 침대에 누워서 지낸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직장암과 파킨슨 병, 척추 카리에스 등으로 고통을 겪고 살았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소설을 썼으며, 병상에 누운 채 습작해서 작가로 등단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들었다. 일본 아사히신문 공모에서 42세 나이에 ‘빙점’이 당선돼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미우라 아야코 이야기다.
고난은 모든 사람에게 무작위로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부당해 보이지만,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삶의 방식은 달라진다. 성공의 열쇠는 지식과 경험의 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보이는 미지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달려 있다.
조금 부족해도, 조금 작아도, 조금 불편해도 어떤가? 우리는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게 더 좋다. 캄보디아를 가볼 일이 있어 톤레이 숍이라는 호수 같은 강 위의 수상가옥에서 베트남 난민들이 떠돌이 신세로 많이 살고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우리 보기에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비교적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상대적 가치를 모르는 면도 있었겠지만, 돈이나 물질의 풍요로움보다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 들이냐' 의 문제로, 나름대로 의미하는 바가 있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들었다.
목표가 결국에는 삶의 큰 차이를 만든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연구소에서 65세 정년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다음과 같은 4가지 유형의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홀로서기 노인층, 이들은 이 설문의 응답자 중 3%로 퇴직 후에도 남에게 의존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며 떳떳하게 살아가는 노인들이었다. 불편 없는 노인층, 이들은 응답자 중 10%로 별 불편 없이 퇴직 전과 마찬가지로 여생을 사는 노인들이었다. 겨우겨우 노인층, 이들은 응답자 중 절반이 넘는 60%로 대다수의 퇴직자들이 그러하듯이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가는 노인들이었다. 무기력 노인층, 이들은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노인들로 응답자 중 27%에 해당하는 데 자선단체나 구호기관, 양로원 등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노인들이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역으로 이들을 만나 다시 설문조사를 해 보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4가지 유형의 노인층이 젊었을 때 각자 다른 인생관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발견하였다.
홀로서기 노인층은 젊어서부터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워 이를 적어 놓고, 적극적으로 실천해 행동으로 옮겨 갔다고 답했다. 불편 없는 노인층은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는 있었지만 그것을 글로 써놓지 않아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겨우겨우 노인층은 인생에서 성공해야겠다는 목표는 있었지만 막연히 생각만 했지 실천하지 못해 그 꿈은 단지 백일몽에 불과 했다고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무기력 노인층은 인생에 있어 아예 어떤 목표도 없었을 뿐더러 꿈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예일대에서도 졸업생을 대상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지금 현재 당신은 구체적인 목표를 글로 써서 보관하고 있는지?" 이 질문에 단지 3%만이 자신의 목표를 글로 써서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머지 97%의 졸업생은 그저 인생의 목표를 생각만 하거나 아니면 장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등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 뒤로 20년이 지난 후 예일대는 졸업생 중 생존자를 대상으로 이들에게 경제적인 부유 정도를 포함 성공 여부를 조사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단지 3%에 해당하는 졸업생들, 즉 졸업 당시 인생의 목표를 글로 써서 가지고 있었던 집단의 재산이 나머지 97% 즉 졸업 당시 목표를 글로 써서 가지고 있지 않았던 졸업생의 재산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 목표가 결국에는 삶의 큰 차이를 만든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인생에서 간절히 바라는 목표를 하나의 글로 적어 둔 사소한 일이 인생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대목이다. 세상을 살면서 기회도 여러 번 오지만 반면에 몇 차례 위기가 찾아온다고 한다. 인생목표를 세워 두었다면 이런 위기에 거센 폭풍을 막아주는 바람막이로, 때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것이다.
마음속 성공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성취해야 할 꿈과 목표를 세워두어야 한다. 만약 없다면 지금이라도 한적한 곳을 찾아 그 꿈을 찾아야 한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눈을 잠시 감고 없던 당신의 꿈을 찾는데 노력해 보자. 선뜻 마음 내키지 않고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한 두 개 써가다 보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딘지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과 미래, 가능성도 찾고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이 발생한다.
메모, 습관화되면 성공한다. 이내화 성공전략연구소 소장은 목표를 글로 써 놓으면 다음과 같은 좋은 점이 있다고 역설한다. 분명한 목표를 지니게 돼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된다. 글로 쓴 목표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심어 준다. 글로 쓴 목표는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목표는 자존심을 높여 준다. 목표의식과 인생에 대한 기대를 낳는다.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 준다. 글로 쓴 목표는 갈등을 줄여 준다. 그리고 목표는 최대의 자신감을 준다.
미국의 올란도에 있는 디즈니랜드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If you can dream it, You can do it,"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연예인이나 프로선수가 인기를 먹고 살 듯이 우리는 꿈을 먹고 살아야 한다.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것을 성사 시킬 수 있다.
습관을 잘 길러야 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습관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고 말하였다. 에디슨은 ‘성공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포기하는 사람이 실패한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에디슨이 인류가 낳은 발명왕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는 습관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전구에 불을 켜기 위해 몇 만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는 에디슨의 재능이라기보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노력에 대한 결과이었다.
리더쉽 이론에 관한 세계적인 학자인 스테판 코비(Stephen Covey)는 「성공한 사람들의 8가지 습관」이란 책을 출간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생각을 바꾸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을 바꾸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을 바꾸면 우리의 운명이 바뀐다.’고 하였다. 코비가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8가지 습관’에서의 성공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리더십을 겸비할 수 있는 사람, 자기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습관은 삶의 질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레그 S.레이드(Greg S. Reid)는 “꿈은 날짜와 함께 적어놓으면 목표가 되고 목표를 잘게 나누면 계획이 되며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 꿈은 실현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엄마’란 말을 익히기 위해 몇 번이나 반목하고 실패했을까? 아마도 백번은 넘을 것이다. 원효대사가 한 말씀으로 일절유심조(一切唯心造)란 명언을 남겼다. 요즈음 말로 바꾸어 보면 사물자체에는 맑음도 더러움도 없고 모든 것이 오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습관이나 나쁜 습관도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 성공이냐 실패냐의 기준 역시 사람의 습관에 의해서 결정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가 없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우리 속담이 있다. 그만큼 습관은 나쁜 습관 좋은 습관 막론하고 우리의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과 습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우리가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인 정신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아무리 험난한 역경도 쉽게 극복할 것이다. '성공하고 싶은 CEO만이 성공할 수 있고, 1등하고 싶은 사람만이 1등을 할 수 있다.' 성공은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한다.
미국의 올란도에 있는 디즈니랜드사에 다음과 같은 말로 성취의 사다리(The Ladder of Achievement)라는 게 새겨 져 있다고 한다.
0% - I won't (나는 할 생각이 없다.)
10% - I can't (나는 할 수 없다.)
20% - I don't know how (나는 방법을 모른다.)
30% - I wish I could (나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40% - What is it? (도대체 무엇일까?)
50% - I think I might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60% - I might (나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70% - I think I can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 - I can (나는 할 수 있다.)
90% - I will (나는 하겠다.)
100% - I did (나는 했다.)
여기서 우리사회가 습관적으로 강조해 온 교육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남에게 절대로 지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일본사회는 대지진이라는 대참사에서도 혼란에 빠지지 않고 기초 질서가 정말 잘 지켜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남을 도우라 배려하라’고 교육한다. 그것이 인류의 기본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인권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조그만 사례이지만 그 속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습관이 배어 있으며, 나아가 국민성을 기르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지어 왔다. 처음에는 조그만 습관이지만 나중에는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의 습관을 바꾸기 전에는 성공을 개대할 수 없다.
미래형 인재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가 쓴 책 ‘새로운 미래가 온다.(A Whole New Mind)’ 에서는 이 혁신적인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미래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인재상을 6가지로 묶어 설명한다. 그걸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비선형적, 직관적, 전체론적인 능력을 소유한 우뇌 중심형 인간이다. 미래는 High concept, High touch 시대이다. 새로운 미래의 중심에 우뇌가 있다. 다니엘 핑크는 대량 생산, 아웃소싱, 정보화, 풍요로움을 경험하면서 지나온 미래의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선, 감성적인 상품을 내놓아야 하고 그것을 잘 할 수 있는 인재란 MBA가 아닌 MFA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MFA를 가진 인재는 물론 우뇌형 인간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미래인재의 6가지 조건으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디자인-하이컨셉 시대의 핵심 능력, 기능만으로는 안 된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라. 스토리- 소비자를 움직이는 제3의 감성, 주장은 문제가 아니다. 스토리를 만들어라. 조화- 경계를 넘나드는 창의성의 원천, 자세히 관찰할 때 진정한 조화를 이룬다. 논리를 넘어선 공감- 디자인의 필수 요소, 논리가 전부가 아니고 공감이 필요하다. 진지한 것이 아닌 놀이- 호모 루덴스의 진화, 게임의 순기능에 대한 놀이이다. 물질보다 의미-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원동력, 순간을 가치 있게, 나를 더 가치 있게 해야 한다.
주목할 만한 현상을 세 가지 개념으로 ‘풍요, 자동화, 아시아’라는 것이다. 풍요로움의 시대에 고객이 선택하는 서비스는 사소한 차이에 근거한다. 공교롭게도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디자인이다. 그간 대우받았던 계산적인 지능이 뛰어난 지식근로자들을 아시아의 값싼 지식 노동자가 대체함으로써, 고액연봉을 받던 선진국의 근로자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법조인처럼 정보독점으로 고수익을 누리던 직종은 이제 법률서비스의 원거리 자동화라는 과정을 통해 기계에게 일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시대로 들어 왔다. 좌뇌 중심의 지식근로자들의 시대가 가고 있다는 우뇌 중심의 인간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산업화 시대는 대량생산으로 상품의 가격을 낮추고, 고품질로 고객에게 신뢰를 얻어야 상품을 잘 팔 수 있었다. 6시그마 운동처럼 상품의 결함률을 최저로 낮추려는 경영기법들이 기업에 전수되었고,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기술력과 품질이었다. 현대 정보화 시대는 하나의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지식근로자들이 대우받은 시대였다. 비상한 머리는 높은 IQ로 무장했고, MBA를 가진 경제 전문가들은 회사에서 대우받았다. 수리 능력이 뛰어난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정보화 시대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을 사회는 중요시 했다. 그들의 높은 성과는 좌뇌의 계산적 분석적 정량화 지능에 기반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정보통신 계통의 지식근로자들은 한 해 연봉이 수십만 달러에 이르렀다.
변호사들은 법률 문서 하나를 대필해주는 것만으로도 먹고 살만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런데, 최근에 접근 불가할 것이라 여겨지던 이들 지식근로자의 업종에 활발한 아웃소싱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도 등 아시아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빠르게 미국의 고연봉 지식근로자들을 대체하고, 아시아의 법조인들이 미국의 법률서비스에 진출함으로써, 가격파괴를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 미국 사회이기도 하다.
정보화 사회에서 컨셉과 감성의 사회로 바뀐다.
좌뇌가 순차적, 논리적, 분석적인 기능을 갖는 반면, 우뇌는 비선형적, 직관적, 감성적이다. 지금껏 세상은 좌뇌 중심형 인간이 이끌었고, 대우받던 시대였다. 모든 학교시험은 좌뇌 중심형 인간에게 맞춰져 있었다. 수리능력과 암기능력에 기반한 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은 다른 이들보다 계산적인 문제 풀이를 더 잘 할 수 있어야 경쟁 사회의 상위층을 점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량 생산과 기계화, 정보화 과정을 거치며 수리적인 문제는 사람보다 컴퓨터가 더 잘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는 컴퓨터처럼 일처리를 빨리, 정확히, 잘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아니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높은 상상력과 뛰어난 감수성으로 무장하고, 다른 이들이 볼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물건을 디자인하거나, 세상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이야기와 상품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인재를 찾게 된 것이다. 세상엔 지금 명석한 인간이 아닌 창의적 인재가 부족하다. 즉, 예술적인 감각을 지닌 창의적 인재가 긴요한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사람들은 남과 공감하는 능력, 돈이 되지 않은 이야기를 창조하는 능력, 삶의 여유와 기쁨을 만드는 놀이, 종교적이건 철학적이건 우리 삶의 목표에 닿아 있는 의미의 추구를 멀리해 왔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뭔가 실적이 필요했고 그것은 쉽게 수치화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이제 점점 바뀌어가고 있다. 비지니스의 세계에서조차 고객의 감성을 자극해야 물건이 팔리는 세상이 찾아온 것이다.
교육학에서 연구한 학습효과를 보면 평균 학습률이 듣기가 5%만이 받아들이고, 독서 10%, 시청각 수업 20%, 집단토의 50%, 실제 참여해 보기가 75%인데, 가르치기는 90%로 매우 높게 나타난다. 가르치면서 익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이라는 것이다. 공자가 예기에서 ‘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큰다.’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울기 때문에 슬퍼지고 도망가기 때문에 무서워지고 웃어서 즐거워진다. 사람들은 거꾸로 슬퍼서 울고 무서워서 도망가고 즐거워서 웃는 게 일반적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감정과 행동 사이 인과관계를 뒤집은 이 말은 이미 100년 전에 제임스와 랑게가 입증해 보인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자극을 주면 몸과 마음에서 반응이 일어난다. 두 가지 중 어떤 반응이 먼저 일어나는지는 상황이나 사람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상황에 대한 인지부터 생리적 반응이고 보면 몸 쪽이 먼저일 것이다. 조건반사 행동을 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즘 웃음치료 전문가들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 진다.’ 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산업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각 분야의 프로들을 대접하는 시대가 되었을 때, 잔재주가 많고 오지랖만 넓으면 고생만 하고 굶어죽기 딱 좋다는 말까지 나왔다. 옛날부터 머리 좋고 다재다능한 사람은 선생님 감이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했다. 다양하고 폭넓은 관심과 재능을 적당히 가진 사람을 서양에서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 하고, 특정분야에서 한 우물을 판 고수를 ‘I자형 인재‘ 또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동양에서는 장인(匠人)이라고 하는 데, 근래에는 매니아(Mania)라고는 말리 젊은이들 사이 많이 사용한다. 재주가 그것밖에 없어 미치도록 죽어라고 한 곳 만 파고들었다. 특정분야에 대한 집착은 한 우물을 죽어라고 파고드는 ‘몰입형 인재’들이다. 그 전문성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요즘 세상에서는 한 우물이 아니라 두더지굴이 되어 자기만의 암흑시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2000년대로 들어 이것으로는 한계에 이르렀고 ‘T자형 인재’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자기 분야 말고는 문외한인 스페셜리스트들보다 그 전문성 위에 상식도 풍부하고 인접분야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도 겸비한 사람이 경계를 넘나드는 융합의 시대와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 능력이 낫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좋은 삶에서 의미가 있는 삶으로
셀리그먼은 좀 더 상위의 삶을 '좋은 삶 good life'이라고 불렀다. 이는 주요 영역에서 자신의 독특한 강점을 잘 살려 만족을 얻는 삶을 의미한다.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일에 대한 시각도 스터즈 터클이 말하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죽음'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천직'으로 될 것이다.
또한 셀리그먼은 "천직이란 일의 가장 만족스런 형태다. 왜냐하면 천직이란 일의 결과로 얻어지는 물질적 혜택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만족감을 주기 때문이다." "예언 컨데 일에서 얻는 즐거움은 사람이 노동에서 기대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서 물질적 보상을 압도할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좋은 삶은 기업에게도 유익하다. "더 많은 행복은 좀 더 높은 생산성과 좀 더 높은 수익을 실현해 준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긍정적인 심리학을 신조로 삼는 경영회사 조차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좋은 삶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셀리그먼의 말이 무엇인지 좀 더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불가항력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세 번째 형태의 행복이 있는데, 이는 의미의 추구다.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무엇이며, 자신보다 큰 무엇인가를 위해 이를 전개하는 것이다." 풍요로 인해 인간이 더욱더 의미를 추구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은 우리 삶과 의식의 중심으로 계속해서 이동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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