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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과나/모음

감투를 쓰고 나면

by 眞草 권영수 2016. 12. 7.

감투가 크면 어깨를 누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제 능력보다 과분한 지위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감투를 쓰고 나면 개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영광이니 한번 욕심을 부려 볼만도 하다. 문제는 감투를 써서는 안될 사람이 되지도 않는 감투를 쓸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에 있다.


그 모자가 크면 흘러내린다. 급기야 그 모자는 귀를 덮고 눈을 가리고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다. 요즘 주변에서 보면 이런 일이 허다하다.  

 

너무 외소하고 작다고 느껴진다면 그 그릇은 많이 담을 수도 없을 뿐더러 더 넓은 세상을 알지도 못한다. 자기에게 무거운 감투는 머리를 짓눌려서 사리와 판단을 하지 못한다.


개인이던 조직이던간에 자신의 생각과 경험만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자는 오만이 문제이다.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자기가 읽어본 책 몇 권과 들어 보았던 몇 마디의 말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바로 여기에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감투를 쓰고자하는 자, 받은 자 모두 반드시 알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감투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다. 감투란 벼슬아치들이 쓰는 날개 달린 모자를 의미하는 데, 그 감투에 달린 날개는 매미의 날개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매미가 이슬을 먹고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벼슬아치들은 이슬을 먹고 사는 매미처럼 욕심 없이 정무를 수행 하라는 의미에서 매미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즉 감투는 그 자체가 청빈함을 의미한다.

 

둘째, 감투의 대중적 위치다. 감투를 쓴다는 것은 교단 위에 선생님이 되는 것과 같다. 교단 위에 선생님은 교단 아래 작은 책상에 쪼그려 앉아 자신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을 지도 감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학생들 역시 선생을 감시 감독하며 또 엄격하게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의 눈은 정확하다.

 

교단 위에 새로운 선생님을 맞은 후 몇 시간만 지나면 곧 그 선생님의 모든 것을 낱낱이 밝혀지고 들어난다. 기본실력, 강의 능력, 하다못해 사생활까지 매끈하게 드러나게 만든다. 즉 감투를 쓴다는 것은 교단 위에 서는 선생님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모습을 모든 대중에게 보이는 위치에 서는 일이다. 대중의 눈은 더욱 냉정하고 잔혹하다. 애초부터 접어둘 애정은 존재 하지 않는다.

 

감투를 쓸만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도깨비 감투라는 우화가 있다. 도깨비들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비기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도깨비 감투인데, 어느 날 도깨비들이 그 감투를 쓰고 제사상의 음식을 훔쳐 먹다가 음식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보고 휘두르는 주인의 몽둥이에 놀라 그만 감투를 떨어뜨리고 달아난다. 그 신기한 감투를 획득한 김 부자, 그 감투를 쓰자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입은 옷은 그대로 보이는 것을 확인 하고 옷을 홀딱 벗은 채 감투를 써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행각을 벌리다 결국에는 발각되어 벌거벗은 채로 치도곤을 맞는다는 우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단순한 우화에 등장하는 이 도깨비 감투가 우리 사회의 감투의 속성을 잘 알려주고 있다. 감투를 쓰는 자는 실오라기 하나없이 벌거 벗어야만 진정한 감투의 효과를 누린다는 것이다. 즉 감투를 쓰는 순간 그대는 모든 것을 다 드러내야 한다.

 

그저 적당히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고, 교묘한 술수로 경력을 포장한 인물들이 일단 감투를 쓰는 순간 과거의 부도덕한 행위가 낱낱이 드러나 오히려 감투를 쓰기 전에 갖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명예마저 다 잃어버리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감투라는 것은 이슬을 먹고사는 매미와 같이 청빈한 마음에, 벌거벗어도 하늘을 우러러 별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공인된 명예의 상징이다. 그러니 애초 벌거벗을 자신이 없다면 감투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감투의 속성을 모르는 일부 불쌍한 인성들은 오히려 감투를 씀으로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투의 후광으로 가리고, 면죄부를 받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으로 오인한 탓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감투에 매달리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그나마 갖고 있던 세속적 자산마저 속절없이 쏟아버리는 참혹한 몰락일 뿐이다.

 

바로 "계영배"가 주는 교훈이다. 단술 한 모금 담아 넘기는 그 지혜를 배우면 휘영청 비치는 한가위 만월도 부끄럽지 않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