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유가 삶의 질이다. 이규섭 시인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하지만 노동생산성은 바닥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OECD가 내놓은 ‘2008년판 통계연보’에 따르면 2006년 기준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357시간에 이른다.
주 5일제의 도입과 유급휴가, 산후휴가 등으로 근로시간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으나 회원국 평균 근로시간에 비하면 32%나 일을 더 많이 했다. 가장 적게 일하는 네덜란드의 1391시간에 비해 두 배에 가깝다. 체코와 같은 동구 국가도 2,000시간을 넘지 않는다.
땀흘려 일한 만큼 소득수준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일하는 양에 비해 2006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3038달러로 23위다.
MB정부는 올해를 선진화 원년으로 선언했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연간 개인 소득을 3만~4만 달러로 올려야 하는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 GDP가 높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선진국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여가를 즐기고 문화를 향유하는 데 써야 선진국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은 사회구조로 업그레이드 돼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은 하위권을 맴돌고 공교육비 부담은 가장 높다. 한국의 문화, 여가 지출액은 GDP의 4.5%(2005년 기준)로 27위다. 일은 많이 했어도 교육비, 식비, 각종 공과금, 경조사비 지출 등에 쪼들리다 보니 문화생활비 지출은 줄 수 밖에 없다.
한 여론조사에서도 교육비가 가계지출의 62%를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교육에 발목이 잡혀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은퇴준비는 엄두조차 못 낸다고 한다. 은퇴 이후 문화생활의 꿈도 소박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외식과 공연을 관람하고, 일년에 두 번 국내여행을 가고, 일년에 한번 정도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이 평균적 기대치다. 삶의 질은 국민총생산이나 개인소득, 구매능력, 교육수준, 건강상태, 여가문화비지출 등의 사회경제적 지표에 의해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1970년대에 비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들의 삶의 질이 20배로 향상되지는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삶의 질이 높은 나라는 당연히 사회복지혜택이 많은 유럽국가들이다. 방글라데시 등 가난한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이 의외로 높은 것은 행복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삶의 질 또한 행복지수와 비슷하여 삶의 여유를 얼마나 누리고 행복을 느끼는가에 달렸다.
값비싼 외식을 하고, 뮤지컬을 보고, 여행을 떠나야 문화와 여가를 즐기는 것만은 아니다. 취미생활이나 봉사활동도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해주는 여가생활이다.
가까운 공원이나 약수터를 느긋하게 산책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삶의 여유다. 생활 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