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유형의 부모입니까?
부모의 유형에 따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각각의 부모의 유형이 자녀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 있다면 좀 더 효율적으로 자녀를 지도ㆍ교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엄격한 부모
엄격한 부모는 칭찬에 매우 인색합니다. 또한 부모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허락했을 때 부모의 권위가 무너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 곧바로 지적하고 잘못한 일에는 반드시 벌칙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모 아래서 자라나는 자녀는 걱정이 많고 항상 불안해합니다. 부모에게서 받는 억압 때문에 우울하고 때로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죄책감을 많이 느끼며 지나치게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예절이 바르기도 하지만 ‘나는 잘 하는 게 없어’ 라고 하는 부정적 자아 이미지를 갖게 되며 죄책감과 자기 비하를 많이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애로운 부모
자애로운 부모는 요즘 가장 많은 부모의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녀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부모는 자녀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 주게 됩니다. 자녀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자녀에게 끌려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로는 엄격하게 야단을 치지만 실제적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다 한꺼번에 분노가 폭발하여 스스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벌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하게 조치를 취하지 못합니다.
자애로운 부모 아래서 자라나는 자녀의 성향을 보면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감이 부족합니다. 또한 쉽게 좌절하고 끝까지 도전하려는 의지가 부족합니다. 버릇이 없고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이며 유아적인 특성을 종종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면도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지도 방법
침착하고, 단호한 태도로 자녀에게 적절한 벌을 주어야 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합니다. 부모가 벌주는 것에 대해 자녀가 항의를 했을 때 단호하게 대처하고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엄격하지도 그렇다고 자애롭지도 않은 부모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좋지 않은 부모의 유형입니다. 부모 자체가 자녀에게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므로 칭찬도 벌도 주지 않고 비난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가 어떤 일을 해도 잘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유형의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를 보면 반사회적 성격으로 무질서하고 세상에 대한 적대감이 많습니다. 어떤 일이나 행동에 있어서 결정을 못 내리고 혼란스러워하며 좌절감을 많이 느낍니다. 세상과 타인에 대한 불신감이 많아 사람을 잘 믿지 못합니다.
자녀를 위한 지도 방법
자녀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은 훈육하고 벌을 주되, 옳은 행동을 했을 때에는 반드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의 요구와 행동에 대해서도 늘 관심을 기울이고 적절한 지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부모
모든 자녀들이 바라는 가장 바람직한 부모의 유형입니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그 상황을 정상적으로 삶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자녀에게 적절하게 좌절감을 경험케 하여 자기 훈련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자녀를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닌 한 인간으로 여기고, 장점을 발견하여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도합니다.
이 유형의 부모 아래서 자란 자녀는 무슨 일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성취동기가 매우 높아서 한 번 목표한 일은 꼭 성취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사리 분별력이 분명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구성원 안에서 리더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부모와 가장 바람직한 자녀의 유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의지를, 꿈을 강제로 꺾어 버린 적은 없는지
나의 욕심으로 인해 자녀가 상처받은 적은 없는지
가정의 달 오월을 보내며 부모와 자녀가 함께 서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정 · 가정 교육의 주체는 부모입니다 「경남 문화」 가정 교육 특집
한때, 내무부에서 ‘좋은 가정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가정의 날’을 정하여 실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가정의 날에 온 가족이 어울려 외식을 함으로 해서 식당 날이 되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모든 가정을 즐겁게 만드는 일이 대단히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이 즐거워야 그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복지가 됩니다. 교장이 학부모나 지역민에게 가정을 잘 건사하는 방법과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존경받을 만한 일일 뿐 아니라, 학생의 학교 학습의 성공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가정・학교・사회 교육의 한 축이 되는 가정 교육, 그 주체인 부모를 교육하는 일을 여러 가지로 연구해 볼 만한 일입니다. 그래서 교장은 더욱 바쁘게 마련입니다.
1. 가정・가정교육 부재 현상의 진단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좋은 가족 제도와 안정된 가정 교육으로 개인의 인격 완성과 사회 질서의 튼튼한 바탕을 만들었으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3대가 한 지붕 밑에서 넉넉지 못한 살림을 하면서도 단란한 가정을 영위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의 역할이 뚜렷했고, 가정의 화목을 으뜸으로 삼았던 조상들의 지혜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중심이며 가정 교육의 주체인 부모는 부부로서의 예(禮), 자식으로서의 예, 어버이로서의 예를 바탕으로 모범을 보였으며, 가정 교육은 전적으로 가례(家禮)를 중심으로 기본 예절을 배우고 익히며 철저히 몸에 배이게 하였습니다. 예절을 익히는 과정에서 인지력, 언어력, 신체력, 사회성 등의 발달을 촉진시켜, 무리하지 않고 전인적 인격 형성에 성공하도록 애썼으므로 모든 교육의 기본이 되는 ‘사람 됨’에 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의 가정 교육은 학문을 하거나, 사회 생활을 할 때, 정치를 하는 데도 활용하였고, 입신출세의 결정적 관건이 되었으므로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되어서를 막론하고 엄격하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 나라가 힘을 잃고 외래 문화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우리 가족 제도는 큰 상처를 입기 시작하였고, 전쟁과 혁명을 거치는 와중에서 그 빛을 잃게 되었습니다.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전래의 가족 형태가 무너지면서 전통적 가정 교육이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산업 사회의 소수 가족 제도가 정착되면서 새로운 가정 형태의 창조에는 무관심했던 사이에 ‘아버지’의 권위가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가정 교육은 방향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정마다 육아 철학이 혼돈되어 자녀의 비위 맞추기를 마치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육아법인양 오해한 젊은 부부는 자녀 시중드는 과보호의 종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 교육의 주체가 이처럼 허약해진 때와 함께 출세주의, 배금주의 사회 풍조로 이어지는 일류 학교병이 만연되어 학교 교육은 상급 학급 진학 준비 위주의 파행적 교육 과정 운영을 초래하였습니다. 자녀인 학생은 고액 과외, 자율 학습, 보충 수업, 주초 고사 등의 이름으로 가정 교육의 기회마저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맞벌이 직장 생활이 가정과 가정 교육 부재 현상을 부추긴 결과,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만들었습니다.
첫째, 청소년을 약골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무절제한 과보호로 신체적, 지적, 도덕적, 사회적 약골을 많이 만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몸집은 크면서 체력은 형편없이 약하고, 아는 것은 많으나 지적 도전력이 없어 학습을 곧잘 포기하며, 도덕적 약골이 돼서 정체성 없이 좌절도 잘하고 유혹에 빠지기도 잘 합니다. 집안에서 왕노릇하며 자라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여 외로움을 잘 타며 성인 의존형의 불안심리가 가득해집니다.
둘째, 가정 교육의 부실로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의 기반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정 교육 영역까지 염려해야 할 정도로 부실해진 가정 교육으로 자녀들은 정서와 습관, 인성이 불안정해져서 학교 학습에 곧잘 실패하게 되고, 사회 교육 역시 수용성이 약해지는 수가 많습니다.
셋째, 가정 교육 부재 현상은 청소년 문제의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넷째, 가정 교육 부재 현상은 가족과 가정 부재 현상으로 이어져서 자녀가 다음 세대에 부모가 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 가정을 가졌을 때 당황하고 실패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2. 가정・가정 교육의 기능 회복
가정은 사회의 핵심 단위이며, 가정 교육은 모든 교육의 토대가 된다는 입장에서 그 기능(기능)의 회복만이 개인과 사회를 구원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직스런 가정의 기능은 그 자체만으로 바람직스런 가정 교육의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정과 가정 교육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부부가 먼저 가정의 기능을 정상화함으로써 그 자녀가 부모의 영향으로 원만한 가정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전략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우리네 가정은 미래 사회와 연계되어, 그에 걸맞는 기능을 갖게 되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좋은 가족 제도와 훌륭한 가정 문화를 가졌다고 해서 복고적으로 되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상의 슬기를 찾아 전통을 토대로 미래 사회에 적합한 관점을 설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1세기 초반의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 다양화 사회, 평준화 사회, 개방화 사회, 국제화 사회, 고령화 사회, 고문화 사회, 고소득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오히려 인간적 폐멸, 사회적 폐멸, 기술적 폐멸의 위험에서 헤매게 된다고 하니, 적어도 인간적 사회적 폐멸만은 가정과 가정 교육의 힘으로 극복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과 같이 가정과 가정 교육의 바탕이 불완전하면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미래 창조의 인간보다, 폐멸 속의 불행한 주인공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가정 모델을 개발하고, 검증하여야 합니다. 가정이란 구조적으로 보면 가족과 가족 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전통 가정은 대가족이면서 사회 제도가 모두 수직적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부장적 특징이 능률적이었을 터이지만, 미래 사회에서는 가족이 최대한으로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혈연적 연대를 함께 하는 형태가 좋으리라고 봅니다. 가족간의 관계와 역할에서 인간적 교감과 신뢰가 교류되면서 사회성이 발달하고 협동성이 길러지는 온상적 가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가정처럼, 아버지는 죽도록 돈만 벌어서 가족의 생활을 보장해야 하고, 어머니는 무한정으로 시중만 들고 자녀를 떠받들어야 하며, 자녀는 부모에게 모든 요구를 할 수 있는 일방적 권리와 무한대의 의무를 짊어지는 형태는 미래 사회의 가정으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렇게 된 가정 교육으로는 그 자녀가 자신과 사회 집단에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부장적 독선은 미래 지향적 가정으로 적합하지 못하거니와, 자녀 우위의 부모 포기 역시 그 자녀에게 비교육적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우리 사회는 가정 중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는 온 가족이 공정한 역할과 기대를 갖고 생활하며, 그 역할을 다 함을 희생이 아닌 봉사로서 보람의 만족을 갖게 하고, 역할에 대한 뜨거운 기대는 요구가 아닌 사랑으로 승화함으로써 감사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족간의 역할에서 학습된 인간의 자질이나 능력은 전 생애를 통하여 어떤 인간 관계나 사회 형태에서도 소중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사회 분위기 또한, 개인적이건 공적이건 사회적이건 간에 자타의 가정이 함께 존중되고 보장되는 분위기와 관행의 조성에 노력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직장을 위해서 가정의 희생을 요구해야 하는 회사, 가정에 충실한 친구를 바보로 놀리는 분위기, 가족은 2차로 밀려야 하는 출세가도 - 이런 것들을 모두의 힘으로 밀어내는 사회 운동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TV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흥미와 극적 장면보다 교육적 영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3. 부모 역할의 변화
가정은 두 수레바퀴격인 부부에 의하여 좌우되기에, 미래 지향의 가정교육을 가능하게 하려면 부모 역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부모 위상의 변화
부모는 사람이 생애에서 맨 먼저 만나는 최고의 교사입니다. 따라서 가정 교육은 전적으로 부모에 의하여 결정되며 그 부모의 부부생활이 전제가 되므로 결혼부터 바르게 출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부와 부모되는 차분한 준비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하여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더러는 당황하고, 더러는 실패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는 1차적으로 좋은 부부인 것만으로 부모 생활의 성공을 점칠 수 있고, 그로써 좋은 가정 교육을 했다고 할 정도이기에 부모의 위상은 부부의 위상에 달려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남편의 귄위주의나 암탉형 어머니의 패권주의 모두를 미래 지향의 가정에서 추방해야 할 것이며, 가정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력이 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권위가 모두 확보되어야 힘있는 교육이 가능합니다. 자녀 앞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권위를,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위를 존중하는 부모 생활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자녀에게 전개되는 ‘부모 교육’이 되고 맙니다.
부모의 의식 변화
부모의 자녀관이 가정 교육의 큰 변수입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고 부모 마음대로 키우려 하거나, 자신의 축소판이나 대물림의 존재로 생각하여 부모의 경험이나 의사에 준거를 둔 성장과 선택을 강요하면 자녀는 어느새 가정 교육의 대상에서 도망하고 마는 결과로 허탈만 남습니다. 오늘날의 자녀는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오면서 체험하지 못했던 변화의 미래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어서 새롭게 맞이하는 사회 현상에 대한 대응능력을 길러야 하니까 어릴 적부터 자아 결정과 자아실현의 기초를 다져야 ‘교육’이 성립됩니다.
부모는 자녀를 끌고 가거나 끌려가는 입장이 아니고, 자녀가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자료와 단서를 주고 자극을 주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항상 ‘네 생각은 어떠냐?’는 말을 잊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교육하는 대상으로 삼아야 하지만 복종해야하는 종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제멋대로 가버리는 슬픔을 보게 됩니다.
가정 교육의 목표와 내용의 변화
가정이 학교 교육의 연장이나 학교 학습의 반복으로 학교 생활을 돕는 정도에 머물기보다는 학교 교육을 보완하여 부족이 없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 가정 교육입니다. 학교 교육이 지적인 영역에 우월한데 비하여 가정 교육은 정의적 영역에 우월한 특성을 가졌으므로 감정, 예절, 가치관, 습관 등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형성해야하는 내용에 중점을 두어야 효과적입니다. 또 이 영역이 잘 돼야만 학교 교육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가 머리의 교육을, 사회 교육이 기능의 교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면 가정은 가슴의 교육이 더욱 유리하다고 보며 이로써 전인적 인간 형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미래 사회가 지금과 다르게 변해갈수록 가정은 친애를 바탕으로 하는 가족 관계에서 변하지 않는 인간의 영역, 변해서는 안되는 사람의 특성을 관리하고 발달시켜야 좋은 가정 교육이 됩니다. 가정 교육은 자녀에 관한 발견과 격려를 통하여 자녀를 한 인간으로서, 나아가 한 사람의 완전한 ‘부모’가 되게 하는 교육이 목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녀 교육 방법의 변화
교육에 왕도가 없듯이 가정 교육 역시 공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교육 방법(기법)이 많이 연구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동・식물 농사를 짓는 것보다,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몇 배가 힘든 자녀를 교육하면서 면허를 가진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농사는 내년에 다시 지으면 되지만, 자녀 교육은 일생일회성이어서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임상의학처럼 자녀를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도리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고, 선험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며 자녀 교육 세미나를 열어 토의도 하고 남의 가정을 알아보는 일도 좋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는 자녀와 여행을 하는 공간적 방법이나 편지를 이용하는 비공간적 방법으로 ‘심정을 전달하는 일’이 중요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정 환경의 변화
가정이 차츰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는 것은 교육상 대단히 좋은 일이나, 교육적인 환경이란 물리적인 것 못지 않게 인간적인 환경에 비중이 큽니다. 물리적 환경은 인간적 환경을 돕는 정도에 지나지 않으므로 가족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하며 가정의 분위기가 밝고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가족의 분위기는 부모인 부부가 연출하는 것이며, 두 사람만의 출연이 아닌, 가족 전체의 무대일 때, 그 모두가 교과서이며, 서로가 교사입니다. 미래 지향의 가정 교육이란 부부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여 경영하는 그 자체일 때 가능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4. 권하고 싶은 부모상(父母像)
시범(본)을 보이는 부모
현대를 모델 상실시대라고 합니다만 자녀에게 부모가 세상에서 존경하는 사람, 닮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사에 자녀의 시범이 되는 행동을 보여 줘야 합니다. 특히 자녀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거나 거친 말투를 주고 받는 일은 삼가야 하며 자녀를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태도 역시 본을 보여야 합니다.
부모 자신을 그렇게 못하면서 자녀에게만 강요함으로써 한풀이 식으로 닥달하는 부모는 좋은 자녀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엄격하면서 자애로운 부모
자녀를 교육하는 이상적인 부모의 태도로서 엄격하면서 자애로운 태도 즉, 외유내강의 부모를 일컸습니다. 엄격하기만 한 부모는 이중성을 기르게 되고 자애롭기만한 부모는 방종성을 기르게 됩니다. 엄격했다가 자애롭다가는 무원칙하게 하면 자녀들 혼란만 거듭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어머니는 자애롭기만 해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지고도 이기는 부모
우리 이웃에는 이기고도 지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녀에게 우겨 다짐으로 부모가 옳다는 일방적인 강요로써 ‘잘 못 했습니다’를 받아 냈지만 자녀의 마음속으로는 자기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 자녀가 많기 때문에 그 자녀의 행동은 변해지지 않습니다. 부모가 다그쳐서 자녀가 판단을 혼란으로 몰고 가지 않으면서 자녀의 형편을 이해 해 주려는 태도를 가지면 자녀는 자신의 잘못과 부모의 아량을 동시에 알고 자신을 수정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성장을 계속하는 부모
부모 역시 부모가 바라는 자녀처럼 한 인간으로서의 몫을 훌륭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이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해서 희망만 했다’면서 자신의 인생을 허무하게 취급하는 부모 태도로서는 자녀로부터 존경받는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살아서 ‘나 만큼만 살아 다오’라고 할 수 있는 자기 성장에 노력하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입니다.
부부 생활을 성공하는 부모
부모 생활은 부부 생활의 연장이며 부부 관계가 부모 노릇의 힘의 원천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자라면서 애태울 때가 많지만 자녀가 부모 때문에 애태울 때도 있으며 부모의 부부 생활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서로의 권위를 상처내고 살아가는 부모는 자녀에게 그 자체가 부모 역할이 아닙니다. 원만한 부부는 아버지의 권위를 어머니가 보장해 주며 어머니의 권위는 아버지에 의해서 확립되어 부모로서의 교육력이 커져 갑니다.
바람직한 부모역할
(부제: 부모가 바뀌어야 자식이 바뀐다) 김인수 고려대 교수
제게 주어진 제목이 “바람직한 부모와 자녀관계”입니다.
그러나 바람직한 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에 대해 제 의견을 말씀드리기보다는, 마침 이번 주제가 [가정위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처방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제 이야기도 “바람직한 부모역할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처방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제목을 약간 바꾼 것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제가 전공한 조직 행동론에서 배운 심리학과 사회심리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부부학교와 부모학교 등 가정문제를 10년 이상 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 사회의 건강과 발전은 인적자원에 있고, 미래의 인적자원은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이 서로 보완적으로 박성수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정서적 능력, 인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을 심어주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제도 중 가정이 학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능력의 기본이 이미 학령이전에 가정에서 상당부분 이루어지며, 학령이후에도 도덕적 능력을 함양하는 인격교육은 원칙을 강조하는 학교보다는 삶을 볼 수 있는 가정에서 더 효과적으로 교육되기 때문입니다.
人格이란 원칙에서 배워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배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대부분의 원칙을 이미 배우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삶의 현장을 마련하는 부모역할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해 전 해인사를 방문했다가 그 입구에 있는 어느 교수의 도예원에서 작품 만드는 현장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수가 큰 진흙 덩어리를 목판에 놓고 판을 돌리니, 교수는 두 팔을 걷어 부치고 팔로 진흙을 빚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그 교수가 무엇을 만드는지 몰랐지만 점점 형이 만들어지더니 아주 멋있는 꽃병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바람직한 부모역할과 잘못된 부모역할의 여러 측면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그 꽃병이 도예교수에게 작품이 되듯이 자녀도 부모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료가 좋지 못하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듯이 아이들도 선천적 요소가 좋지 않으면 좋은 자녀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어진 선천적 조건이 있다고 할지라도 자녀는 부모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먼저 잘못된 부모역할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린 후 바람직한 부모역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그 도예교수가 갑자기 다른 바쁜 일이 생겨서 현장을 떠났다고 생각해봅시다. 그 사이에 고양이가 와서 할퀴고 지나가고, 강아지가 그 위에 오줌을 싸고 지나가고, 동네아이들이 발로 밟고 지나갔습니다. 나중에는 기다리다 지친 조수가 진흙이 굳기 전에 자기 마음대로 병을 하나 만들어 버렸습니다. 교수가 돌아와 보니 자기 작품이 엉망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때 교수가 그 작품을 다시 뜯어고치려고 한다면 이미 말라버린 흙에 금이 가고 깨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작품을 망쳐버린 도예교수와 같이 후회를 합니다. 자녀들이 물렁물렁한 진흙같이 빚기가 쉬울 때에는 다른 일에 정신없이 돌아가느라고 내버려두었다가 세상의 풍조에 의해 제멋대로 잘못 형성되어 굳어 버린 후 잘못된 모습을 보고 한탄하고 뒤늦게 바로 잡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박성수 교수님의 발표에서 범법자들을 조사해 보니 “아무도 잘못되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 “부모들이 잘못된 것을 교정하려고 많이 애를 썼다” 그러나 “그러한 교정적 행동이 부모에 대한 적개심으로 발전해 버렸다”고 한 부분이 바로 이러한 부모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잘못되는 것을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바르게 빚어야할 때에는 팽개쳐 두었다가, 제멋대로 잘못 굳기 시작한 후에야 때늦게 억지로 바꾸려고 하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부모가 빚을 수 있는 어린 시절에 건전한 정서적 능력, 인지적 능력과 도덕적 능력을 제대로 넣어주었어야 합니다.
그럼 바람직한 부모역할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부모역할이 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람직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전 바쁜 하루였지만 막내 딸아이의 부탁을 들어주느라고 여의도에 자전거를 타려간 적이 있습니다.
먼저 자전거를 두 대 빌려서 한 시간동안 함께 같이 탔습니다. 그 다음 한 시간은 아이 혼자 타게 두고 저는 주차장으로 돌아와 읽어야 할 논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근처를 지나가던 여자아이들이 아빠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꼭 우리아이 음성과 비슷해서 저는 여러 번 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그 때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서 “너 내가 누구인지 아니? 나는 다른 아빠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는가를 가르치는 선생이다. 나하고 같이 가자, 내가 너의 아버지보다 열 배는 더 잘해 줄 수 있을게다.”
이렇게 접근했다면, 아이들은 유괴범 잡으라고 고함을 지를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에게는 자기 아버지 외에 아무도 아버지가 되어 줄 수 없습니다. 다른 일은 제가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제가 토론자로 참석했지만 제가 안 했다면 다른 분이 더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정에서 남편과 아빠의 역할은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습니다. 즉, 부모역할은 다른 사람이 도저히 대신해 줄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책임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평생동안 성직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한 엘리라는 제사장이 자기 아들 둘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직도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있지만 아버지의 역할은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둘째, 부모는 자녀가 선택하지 못하는 제일 처음 만나는 스승이요, 가장 중요한 스승입니다.
이 스승이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서적 능력, 인지적 능력, 도덕적 능력의 근본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정신적인 것을 유산으로 넘겨주기 위해, 자녀가 선택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의 선택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훌륭한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모역할을 최고의 스승으로서 바람직하게 수행하려면 자녀양육을 위한 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먼저 어떠한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분명히 있어야 합니다. 그 도예교수는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작품의 마지막 모습에 대한 목표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진흙에 손을 넣기도 전에 완성될 작품의 모양, 무늬, 색까지 머리에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작품에 대한 목표가 분명했다는 말입니다. 제가 부모학교를 하면서 참석하는 부모에게 물어봅니다. 자녀양육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보았느냐고요. 그러나 그런 목표를 설정해 본 부모가 없습니다. 애매 모호하게 공부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는 생각만 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부모가 하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부 잘하여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는 것이었지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목표란 자녀들이 우리의 품을 떠나는 20대에 정서적으로, 인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저희 집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구체적인 예가 있어야 할텐데 다른 예가 없어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8가지의 목표를 설정했었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할 것 (2) 사람을 귀하게 여길 것, (3)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 할 것, (4) 철저히 검약할 것, (5) 검약한 것으로 열심히 남을 도와줄 것, (6) 작은 규칙도 우직스럽게 지킬 것, (7) 정직할 것, (8) 부모와 어른의 말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순종할 것 등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박성수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도덕적 능력을 넣어주기 전에 정서적 능력과 인지적 능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넷째, 그 목표에 맞는 작품을 만들기 위한 세부적인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도예교수는 자기의 작품을 목표대로 만들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세밀한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부모도 자녀의 인격교육을 위해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치밀한 작전이 있어야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가 없고, 구체적인 전략이 없으면 충동적인 부모가 됩니다. 목표와 전략은 우리들로 하여금 준비성 있는 부모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저희 집에서는 목표를 벽에 걸어두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경우에 일관성 있게 사랑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가르쳤습니다. 큰 아이들이 23,24살이 되었을 때 한 번 물어보았습니다.
부모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가르친 것 같으냐고. 놀랍게도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다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앞에서 배우지 아니하고 부모의 뒤에서 배운다는 서양속담이 그대로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다섯째, 전략을 제대로 수립하고 추진하려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피할 수 없고 가장 중요한 부모역할에 대해 열심히 배우지 않고 어떻게 바람직한 부모역할에 필요한 능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회에 어디서도 이러한 교육을 시키는 곳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유교적 규범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것도 없습니다. 학교는 상급학교 입시로 정신이 없습니다.
가정에서도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한 때에 입시의 압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 종교계의 기둥을 이루는 기독교나 불교도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시급한 일은 바람직한 부모역할을 교육하는 프로 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입니다.
결혼전의 청년들에게는 결혼을 준비시키는 프로그램을, 임신한 부모에게는 육아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사춘기에 있는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을 위한 계속교육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가서 희망이 생긴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섯째, 시간이 없으므로 부모가 해야할 역할 중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제 이야기를 끝내고자 합니다.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속감입니다. 소속감은 사랑을 통하여 생깁니다. 기본적인 정서적 안정이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무조건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은 사랑을 확인 받으며 소속감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고 격려와 칭찬을 통하여 두 번째 욕구인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즉, 자기는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감도 갖게 됩니다. 밝은 자화상도 이렇게 해서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열등감이 생깁니다. 인지적 능력도 이것을 바탕으로 많이 자랄 수 있습니다. 소속감과 자존감이 잘 이루어지면 그 다음 세 번째 욕구인 자기실현이 잘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랑, 격려, 교훈을 주어야하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매주 가족회의를 가졌었습니다. 먼저 예배를 드리고, 그 다음 지난 한 주 동안의 생활을 나눕니다. 또 그 다음 주 동안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지막으로는 가정에서 결정해야 할 중요한 것을 상의하여 결정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대화하는 습관을 넣어주었더니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도 계속 대화의 길이 열려있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긍정적인 일을 통하여 부모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부모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쁜 일을 통하여 부모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들이 나쁜 쪽으로 갈 수 있는 시발이 됩니다. 그것이 심화되면 자기를 거부한 부모와 사회에 대해 적대감을 갖게 되고, 자기들을 뒤늦게 교정하려는 부모의 충동적 교정행동에 대해 더 심한 적대감을 갖게 됩니다. 결국 자기들을 거부하고 구박한 부모와 사회에 대해 복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모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는 짓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에게 훈계 (교훈과 징계)할 때에도 사랑의 목표가 올바르게 서 있어야 합니다. 잔소리는 훈계가 아닙니다. 교훈의 목표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사랑이 나누어져야 합니다.
모든 이가 하나된 관계 속에서 평화, 기쁨, 사랑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교훈입니다. 징계도 사랑의 행위입니다.
평소 구체적인 사랑을 10번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징계를 할 권리가 없습니다.
사랑의 매가 되기 위해서는 매 앞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앞서지 않을 때 자녀들은 징계에 대해 적개심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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