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연 아름다운 삶
마음이 통하여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참 좋은 삶의 인연이고 싶습니다.
아침 이슬처럼 맑고 밝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는
푸른 삶의 향내음이 가득한
참 아름다운 삶의 인연이고 싶습니다.
늘 함께 할 수 없지만
마음깊이 흐르는 정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낌만으로
삶의 기쁨과 아픔을
나누며 웃음과 눈물을 함께 하는
참 따뜻한 삶의 인연이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함께 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남겨지는
깊은 정으로 늘 맑은 호수같이
푸른 삶의 참 좋은
인연으로 오래 기억되는
우리이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 속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두 눈
두 눈으로 나만을 위해 보았다면
그 두 눈으로 남을 위해 보십시오.
보는 것이 비록 좁다 할지라도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을 본다면 찾아가서 도와 주십시오.
이는 두 눈을 가지고 해야 할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두 귀
두 귀로 달콤한 말만 들었다면 그 두 귀를 활짝 여십시오.
듣는 것이 비록 싫은 소리라도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들어주며 위로해 주십시오.
이는 두 귀를 가지고 함께 할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코
코로 향긋한 냄새만 맡으셨다면
그 코로 이제부터 다른 냄새도 맞도록 하십시오.
환경을 썩게 하는 오염원을 감시하고,
보존해서 잠깐 빌려 쓰고 있는 후손에게
온전히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
입으로 불평만 하였다면 그 입으로 감사하십시오.
입이 하는 말은 무한대여서
사랑 가득담긴 감사하는 말과 함께 웃으면서 고맙다고 하십시오.
이는 고운 입 가지고 살아 갈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두 손
두 손을 움켜쥐고 있다면 그 두 손을 활짝 펴십시오.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주십시오.
이는 두 손을 가진 최소한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두 발
두발을 나를 위해 걸으셨다면
그 두발을 이제부터는 필요한 사람 위해 걸어보십시오.
휠체어를 타고 가는 사람은 밀어주고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부추겨 주는
작은 일부터 하다보면 걸어가서 꼭 도울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마음을 꼭 닫고 살았다면 이젠 그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마음 씀이 비록 크지 않더라
그것을 주변의 사람을 향하여 미소로 대하며 사십시오.
이는 내가 사랑을 받고 나눠야 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아름다운 인생을 위하여
자신의 삶에만 너무 집착하지 맙시다.
삶 자체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자신을 믿읍시다.
자신감이 힘입니다.
자신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입니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합시다.
인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시다.
참다운 나로 살아갑시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노력합시다.
체면을 벗어 던지고 눈치를 보지 말고 내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자신의 삶을 영위합시다.
삶을 배우기 위해 슬픔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삶을 배우기 위해 고통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삶을 배우기 위해 좌절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슬픔도 인생의 일부입니다.
고통도 인생의 일부 입니다.
좌절도 인생의 일부입니다.
슬픔을 가슴에 안아 보세요, 그리고 버리세요.
고통도 가슴에 안아 보세요, 그리고 잊으세요.
좌절도 가슴에 안아보세요, 그리고 지우세요.
자신을 슬픔으로, 고통으로, 그리고 좌절로 구속하지 마세요.
슬픔이나 고통이나 좌절을 마음에 담아두면 안됩니다.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슬픔입니다.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이 고통입니다.
좌절은 삶을 어긋나게 하여 인생을 포기 하게하는 암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을 합시다.
사랑을 주는데 인색하지 맙시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사랑은 간단합니다.
복잡한 것은 우리들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한다, 고맙다, 수고했다.
미안하다, 괜찮다, 라는 말을 많이 사용 합시다.
사랑은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일입니다.
기쁨을 나누는 삶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
축복을 나누는 삶 얼마나 축복받을 일입니까 ?
기쁨을 나누며 일하고 사랑을 나누며 사는 인생 얼마나 멋진 인생입니까?
아름다운 인생길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을까?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을까?
할아버지 손잡고 머리 깎으러 갔던 때가 어제 같은데,
아버님 손잡고 목욕탕 갔던 시간이 어제 같은데,
어머님 손잡고 시장구경 갔던 시간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내 곁에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시지 않는다.
어느새 내 곁에는 아버님도 어머님도 계시지 않는다.
이젠, 기억조차 흐릿해 지는구나.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이젠 내 나이가
옛날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고,
옛날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세월과 함께 떠나버린 청춘
돌이킬 수도 없는 흘러간 청춘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이젠 마음도 몸도 지쳤으니
흘러간 청춘 아쉬워 어찌 할거나
청춘이란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고 싶은 것 다해보고
가고 싶은 곳, 다 가 보았을 텐데
흘러간 청춘을 아쉬워하지 않았을 터인데
나의 인생은 오직,
나의 것이라는 것을 일찍 알았더라면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청춘이 덧없이 흘러가고 나서야 알았으니
이제, 조금 남아있는 인생길이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보람차고 멋지게
나를 위한 삶을 살아 보리라.
결코, 후회하지 않을 그런 삶을 살아보리라.
아름다운 인생길에서//소망
삶의 향기
부모의 눈에는 자기 자녀가 가장 소중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해도 설령 잘 생기지 못했어도 그렇습니다.
부모의 마음에 담겨 있는 사랑 때문입니다.
어느 책의 한 구절에서“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 안에 꽃이 자라나야 한다.”
돈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꽃을 보면 ‘저건 얼마짜리이지?’ 하고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아름다운 마음이 없다면 꽃을 보아도 무덤덤합니다.
꽃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그 사람 마음에 아름다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향기처럼 그 삶의 향기가 퍼져 나갑니다.
아름다운 세상은 바로 나에게서 시작됩니다.
이 세상이 선해서 내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선한 내가 모여 세상을 선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아름다운 마음을 키울 때,
그것이 이웃에게 전해지고, 결국 세상에 이릅니다.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되길 / 雪花 박현희
흐르는 세월의 강에 떠밀려
어느덧 중년을 맞고 보니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묶어두고 싶을 만큼 아쉽습니다.
작은 돌멩이 한 개
이름 없는 들꽃 한 송이조차도
존재의 의미가 있을진대
하물며 내 존재의 의미를
스치는 바람결에라도 묻고 싶습니다.
무한한 시간과 우주 공간 속에서
티클 만큼도 되지 못하는
유한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세상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음이
크나큰 감사와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누구나 희로애락을 맛보며
오늘의 삶을 과거라는 틀 속에 가두지만
어제의 아픔과 슬픔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후회 없는 오늘을 살았음일 테지요.
지금 이 시간의 기쁨과 슬픔 모두
지난 추억 속에서
아름답게 빛나는 삶의 향기가 되길
오늘 하루도 침묵 중에 기도드립니다.
이용(利用)
노자(老子)는 소유하는 것은 ‘이’(利)이고,
소유를 없애는 것이 ‘용’(用)이라고 했습니다.
이(利)와 용(用)을 합하여 ‘이용’이라고 쓰는 이유는
소유한 재물은 올바로 사용될 때 완전해질 수 있다는 뜻에서입니다.
젊은 시절 열심히 벌어서 이웃과 사회를 위해 올바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사람은 이익만 추구하며 재물을 쌓아만 놓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올바로 벌어서 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재물에 대한 탐욕은 사람을 눈먼 이로 만듭니다.
참으로 가련한 사람은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라 그의 재산에 소유당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세상에 있을 때 소유한 모든 것은 죽은 뒤에 모두 다른 이의 소유가 됩니다.
그러나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때 그 선행은 영원히 우리의 것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비단 돈만이 아닐 것입니다.
가진 재능과 시간 등 우리가 봉헌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적게 가졌기 때문에 봉헌할 것이 궁핍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궁핍하기 때문입니다.
행복추구
헌법 제10조 전문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여, 국민 누구든지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근간에 우리 사회에서 행복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고 정책도 다양하게 마련되고 있다. 국가정책과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정책은 물론 민간기업과 사적 영역에서도 행복 추구와 행복 만들기, 행복 세일이 운위된다.
고래로 ‘행복’에 대한 무수한 논의가 있어 왔지만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이라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행복을 느끼다’, ‘행복을 누리다’, ‘행복에 젖다’, ‘행복이 가득하다’와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행복은 모든 사람을 감싸고 있는 주관적 안녕감이다.
행복은 철학, 종교, 법, 사회 등 삶의 모든 영역에서 추구된다. ‘만족하고 즐겁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한 규범적 장치이고, 국가는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종교도 결국은 그 종교를 믿고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그 궁극적 목표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금생의 행복, 내생의 행복과 궁극적 행복을 말하는 것도 이와 같다.
어느 경제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은 소득 2만 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7위라고 한다.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국민의 행복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 작동한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의 각 부문에서 행복에 관한 논의가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왜 국민의 행복도는 이렇게 낮을까.
국민 개개인과 국가, 사회가 공동으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 개인은 결국 행복의 주체가 ‘나 자신’임을 명확하게 알고 더불어 사는 건전한 사회 속의 하나라고 인식해야 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의 원리는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자신이 행복의 주체이고 사회 속의 또렷한 존재임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 사회는 행복의 요소가 되는 국민의 건강, 부, 교육, 복지 등을 조직적으로 지원·진단하고 피드백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행복한 삶을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했는데, 이것은 공동체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했을 때의 상태라고 한다. 결국 행복 추구는 개인과 공동체의 공동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상 ‘행복 추구’(pursuit of happiness)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776년의 미국 버지니아 권리장전이다. 우리 헌법에는 1980년 개정 시에 행복추구권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였고, 현행 1987년 개정헌법에서도 그대로 존치하고 있다.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급부를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내용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국가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포괄적 의미이다. 행복추구권의 내용에는 불행의 배제, 국가가 행복의 내용을 강제하는 것의 금지, 행복 추구의 환경 조성 등이 모두 포함된다. 행복추구권에는 소위 ‘일반적 행동자유권’, ‘자기결정권’, ‘계약의 자유’, ‘개성의 발현’ 등이 포함된다. 행복추구권으로부터 나오는 자기결정권에는 성적 자기결정권, 소비에 대한 자기결정권, 생활스타일의 자기결정권,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과 생명·신체의 처분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이 모두 포함된다.
행복 추구의 내용과 양상은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나 행복의 추구가 개인과 국가가 함께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삶의 목표라는 점만큼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개인의 주관적 안녕감과 국가·사회의 조직적 지원 사이에는 필연의 관계가 형성된다. 또한 행복의 추구는 선언에 머물거나 추상적이어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가족의 얼굴처럼 살갑고 실제적이어야 한다. <서울신문(김희옥/동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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