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 5대 요소 다 갖춘 지역
명당 5대 요소 다 갖춘 지역
풍수지리학자들은 공통으로 성북동은 풍수지리 5대 요소인 용혈사수향(龍穴砂水向)을 모두 갖춘 곳이라고 평가했다. 또 ‘최고의 명당’이라는 찬사를 쏟아냈다. 풍수지리에서 용(龍)은 산의 모양을, 혈(穴)은 산이 끝나고 기운이 모이는 지점을 의미한다. 특히 성북동은 험하기로 유명한 북한산 산세가 이곳에서 끝나면서 땅 기운이 그대로 모인 혈로 평가했다.
박정해 정통풍수지리학회 이사장은 “성북동은 돌산으로 산세가 험한 북한산의 기운이 굉장히 힘 있게 들어오는 명당자리”라고 말했다. 특히 성북동으로 들어오는 북한산의 강한 기운은 풍수지리에서 박환(剝換)이라고 불리는 순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땅의 기운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산은 문수봉을 거쳐 청와대 뒤에 북악산을 만들고, 팔각정을 지나면서 껍질을 벗겨 내듯 강한 기운이 순한 기운으로 바뀐다.”며 “이로 인해 혈에는 순한 기운만 모여 땅 기운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대단한 땅” “성북동은 낙산 자락이 주변을 감싸 좌청룡·우백호도 매우 탁월하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일자문성은 정승이 나오는 자리로 부귀를 동시에 가지는 땅”이라고 평가했다.
좌청룡·우백호로 더 잘 알려진 사(砂)는 지형을 감싼 주변 산의 모양을 의미한다. 성북동은 동네 자체가 숲 속에 있고 산이 주변을 감싸고도는 모양새로 주변 지형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전항수 풍수지리원 원장은 “성북동은 배산임수 지형을 제대로 갖춘 곳으로 북한산 지류가 병풍처럼 뒤를 감싸고돌고 있다.”고 분석했다. 좌청룡·우백호와 함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마을 앞산을 의미하는 안산(案山)의 경우에도 일자문성(一字文星), 즉 산 위가 반듯한 일자 모양으로 부귀영화가 흐르는 땅이라는 평가다. 집들을 남향 배치한 것은 방향(向)에서 좋은 점이다. “북쪽에 산이 있어 대부분의 집이 남향을 향하는 것도 명당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라고 말했다.
◆ 골짜기마다 돈이 흘러나오는 곳
성북동은 재물을 의미하는 물(水)이 골짜기마다 흘러나오는 지형이다. 박정해 이사장은 “성북동은 재물을 의미하는 물이 골짜기 여러 곳에서 나오지만, 빠져나갈 때는 한 줄기로 모여 나간다.” 며 “재물이 나오는 곳은 여러 곳이고 나가는 곳은 한 곳이기 때문에 돈이 모일 수밖에 없는 지세” “구인회 LG창업주의 땅이 최고로 좋은 명당”이라며 “혈을 맺은 자리 즉 땅 기운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집터가 정확히 위치한다.” 고 말했다.
전항수 원장은 성균관대학교도 성북동 지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분석했다. “풍수를 상당히 많이 따지던 유학자들이 당시 성균관을 만들기 위해 터를 알아보다 땅 기운이 이어지는 지금의 곳으로 잡은 것”이라며 “성북동에서 이어지는 땅의 기운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다”고 말했다. 성북동에서는 비탈진 곳의 집보다는 평평한 곳에 지어진 집이 좋다고 분석했다. “북한산 기운이 모이는 곳은 평평한 곳이다”며 “좌나 우로 기울어지거나 경사가 급해지면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한 사유는 생각하는 인류가 탄생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속 돼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온갖 사상이 발달한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무엇이 정답이라는 딱 부러진 설명은 없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사안에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왜?’라고 물으면 잘 대답하지 못한다. 왜 둘은 일과 직장, 돈, 가족 등과 관련된 문제에서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까?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지 오래인데, 왜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경제 권력의 중심에는 여전히 남성이 훨씬 더 많은 걸까?
일반적인 해석은 불평등한 법과 관습, 사회적 편견, 교육환경 등 ‘구조적인 문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특히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페미니즘은 이런 관점에서 문화와 관습의 허울을 걷어낸다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해지리라, 인위적 장벽을 무너뜨리면 남자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리라 믿었던 사상이다.
캐나다의 임상심리학자 수전 핀커의 저서 <성의 패러독스>(숲속여우비 펴냄)는 이 같은 페미니즘 사상의 문제의식과 긍정적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그 ‘목적’에 대해선 근본적인 이견을 제기하는 책이다. 왜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야 하는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 사이의 평균적인 차이에 대한 좀 더 섬세한 이해가 진보에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는 각종 조사 자료와 직접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남자와 여자가 무엇이 다르고, 여자가 특정 사안에 대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밝힌다. 그 중요한 결론 중 하나는 여자는 지위나 돈보다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한 사회과학자가 15개 나라에서 다양한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 1854명의 일에 대한 동기를 조사한 결과가 그렇다, 여자는 높은 임금과 직업보장, 혜택 같은 것보다 한 분야에서 관심을 갖고 기여할 수 있는 능력, 실제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역량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대학원 학위 등 전문 학위를 가진 여자 2443명을 대상으로 ‘인재 유출’ 현상을 분석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MBA를 취득한 여자 3명 가운데 1명은 전임제 일을 선택하지 않았고, 성취력이 높은 여자의 38%는 승진을 거절하거나 보수가 더 낮은 자리를 선택했다. “이 여자들은 방해를 받아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 그것을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리에 오르는 것은 이들의 직업 목표에서 후순위였다. 무려 85%의 여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좀 더 자유롭고 자율적인 일정 등을 더 원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다시 앞서 던진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대체 왜 남자와 여자는 이렇게 서로 다르냐는 것이다. 저자는 놀랍게도, 적지 않은 여자가 불쾌해 할 수 있고 심지어 퇴행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생물학적 차이’에 주목한다. 태아 때 형성된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으로 남자와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고 주장한다.
남성적인 특징이 나타날 때 많이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에 따라 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발생한다고 한다. 여자 아기들로부터 더 분명하게 확인되는 ‘감정이입’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고 적절한 형태로 응답하는 능력, 타인을 돌보고자하는 욕구 등에서 서로는 구별되는 큰 특징을 보이기 시작한다.
나름 설득력 있는 근거도 제시한다. 1900년대 초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키부츠운동(집단농장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운동)은 성의 정형화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같은 조건에서 키우고 가르치면 남자든 여자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기대됐다. 아이들은 남녀 구별 없이 교육받았고 생활했다.
하지만 지난 1975년 키부츠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들 34000여명에 대한 삶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결과는 달랐다. 여자의 70~80%는 주로 어린이와 교육 등 사람 지향적인 직업에 더 끌렸고, 반면 대다수 남자는 논밭이나 공장·건설·설비 분야의 일을 선호했다. 남자들은 아무도 유치원에서 일하기를 원치 않았으며, 초등학교 교사직을 선택한 남자도 18% 이하였다. 여자들은 특히 자신에게 주어진 식사와 취침 시간 외에도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경향을 보였다.
유아들에 대한 관찰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또 다른 한 조사에 따르면, 남자 아기들의 경우 42%가 사람 얼굴보다 놀이기구인 모빌을 더 오래 응시한 반면, 여자 아기들은 17%만이 모빌을 더 오래 바라봤다. 여자 아기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더 빨리 반응해서, 다른 아기가 울면 자기도 더 오랫동안 울고 다른 사람이 슬퍼하면 자기도 슬픈 표정을 짓는 특징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둘 중 누가 더 우월하다거나,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사회에 더 가치 있다고 평가도 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미 각 분야에서 여자가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고, 또 상당 부분 여자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는 오늘날(적어도 유럽과 북미에서는)에는 성 차이를 좀 더 냉정하게, 그리고 심지어는 낙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근본적인 성 차이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폐해는 많다. 이를테면 경쟁과 성공을 중시하는 표준 남성의 접근방식에 맞춰서 설계된 직장의 조직 시스템과 근무 일정은 능력 있는 많은 여성의 의욕을 꺾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직장 여성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조화시키고 싶어 하는 여자들”이라며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승진이나 평가 과정은 여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을 포기하게 하거나 시간제 일이나 휴식기를 선택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를 극복할 대안은 다양한 직급·근무체계와 가족·자녀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시스템, 출산휴가 확대, 융통성 있는 승진 과정 등이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남자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남자라고 해서 만연한 ‘승자독식 구조’를 당연하게 여기고 엄청난 노동시간을 흔쾌히 즐길 리는 없다.
이 책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분명한 통계상의 차이점이 존재하지만, 결코 절대화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그보다는 성 차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한 근거’가 되길 바란다. 여전히 성 차이는 사회 구조가 낳은 것이며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낡은 관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있는 차이’를 없다고 하는 것도 때로 폭력적일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