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필/삶

이 말을 아시오. '지어지락'

眞草 권영수 2024. 5. 23. 15:39

지어지락(知魚之樂), 당신은 이 말의 뜻을 아시기나 하시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운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그래서 '생무살인(生巫殺人)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대신 '알아야 면장을 하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 그렇다 뭘 좀 알아야 그 분야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사회나 조직에서 네가지 분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바로 똑똑한 사람이 부지런하거나 게으른 경우, 무식한 사람이 게으르거나 부지런한 경우라고 한다. 여기서 가장 위험한 일은 무식한 사람이 부지런한 경우라고 한다. 이는 공공기관이나 사기업이 다 마찬가지 문외한 사람이 어느 단체나 기관에서 최고 결정권자나 조직의 수장이 되어 뭔가 일을 벌리고 열심히 할려고 하는 경우를 말하는 데,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가장 불행한 경우로 혹여 잘못이라도 된다면 조직의 갈등은 물론 그 기관을 말아 먹기 딱 좋은 구조라고 한다.

 

그런데 기관장이나 단체장을 회원들이나 여러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거로 투표해서 뽑는 선출직이나 일부 낙하산 임명직의 경우 이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좋은 점도 많겠지만 일 순간의 인기몰이나 특수한 역학관계나 바람에 의해 검증되지 못한 채 선출되는 사례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해관계가 얽혀 있거나 중대한 일에 전문가 집단이나 그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거나 일을 추진한다면 그래도 다행스럽고 괜찮다. 

 

그렇지 못한 경우인데 어찌보면 현재 돌아가고 있는 이런 상황이 우리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모르면 아예 전문가 집단을 믿고 철저히 검증을 거친 사람들에게 맡겨 밀어주어야지. 그렇게 해도 새로운 일을 시행해 보면 여러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 고집을 부리거나 자존심 대결로 끝까지 밀고 가는 것은 오기라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지금 당장 파탄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좀 흘러가면 예측이 되는 데도 그 여파가 엄청날 것이 뻔한데도 강행해 버린다면 사안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을 띠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 집단의 의견도 송두리채 무시해 버리고, 사회적 합의나 벙법론도 잘못된 현실에서 갈등으로 오는 비용과 야기될 혼란을 어찌 감당할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경우이다. 무엇보다 해당 집단에 속해 있는 전문가들의 사기가 꺽여버린 채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이나 자부심 마저 떨어진다면 그 분야의 비중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마음에 배신감마저 느껴 굳이 헌신과 거리가 멀어진 채 전문직으로 임하는 자세가 많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두고두고 돌아가야하는 현실이라면 딱하기 그지없다. 솔직히 안타깝기까지 하다.

 

힘을 가진쪽에서 미리 정해 놓은 대로 조건을 못박아 두고 상대에게 '그건 안돼' 찍어 누르듯한 상태에서 조건없이 대화 하자고 한다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 갈등구조 아래 헝클어질대로 헝클어 놓은 채, 선후를 뒤바꿔놓고 이런 뒤죽박죽 현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윗선에서 강력히 밀어붙이니 어쩔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산하부서들 조차 올바른 말도 못하고, 검증이나 명분도 부족한 상태에서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앵무새 처럼 똑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더 나아가 그네들의 업적이리고 자화자찬이라도, 추진력이란 말로 포장할지도 모른다. 정녕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왜 필요한지? 자칫 역사에 죄를 짓지는 않는지? 이게 정말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묻고 싶다.

 

칼자루를 쥐었으니 그들 나름대로의 명분을 세워 힘의 논리로 찍어 누른다면 지금 당장은 약자가 어쩔 수 없이 당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는 성장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과거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이 지속가능성 롱런(long run)과는 거리가 있다. 수십년 현장에서 누벼온 책임있는 전문가들 입장에서 보자면 바보가 아닌데도 바보 취급당해야 하는듯 씁쓸한 허탈감 상실감 공허감 마저 느낀다고 한다. 얼마나 참담하고 답답한 지경인지 알만도 하다. 향후 사회적 휴유증이나 부실운영 등 그 엄청난 여파를 예측 생각해 보면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네 가지 분류의 사람중에서 가장 위험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지? 그래서 '생무살인(生巫殺人)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말이 나온듯 심히 우려스럽다. 

 

더우기 여러 계층이 함께 겪는 갈등 구조속에서 사회적 타협점을 못찾아 젊은이들만 총알받이로 최전선에 내몰린 채, 어른들은 이런 식으로 팽팽히 맞서 원칙만 고수하다 수수방관하거나 해결의 실마리도 못찾는 이 현실에 이제는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 어찌보면 심히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참으로 이것밖에 안되는 그릇이란 말인가? 한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잘 보여준 사례인듯, 지어지락(知魚之樂), 당신은 이 말을 아시오? “그대는 물고기가 아닌데, 물고기가 즐거운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장자와 혜자가 호수가를 거닐다가 노닐고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나눈 대화로, 이에 빗대 안타까운 현실에 모두가 자유로울 수 없어 반성해야 한다.

 

어느 집단이든 크든 작든 애당초 지도자를 잘 선택해야 하고 '알아야 면장을 하지' 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 듯하다. 과거에 담당자의 무지로 출생신고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생년월일이 잘못 표기되어 있거나 이름이 아예 바뀌거나 틀린 것은 다반사이고, 그런 행정착오로 수십년 세월이 흐른 현재에도 출생년도가 늦게되어 있어서 동료들에 비해 정년이 늦어지거나 엇비슷한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종종 있다. 그래서 단적인 예에서 처럼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나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말을 예나 지금이나 재소환해 어찌보면 빈정거리듯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과거는 과거로 흘러 갔을 뿐이고 요즘 세상에도 그런 일이 꼭 있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어지락(知魚之樂) 물고기가 즐거운지

생무살인(生巫殺人)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