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보러 가는 재미도 있다.(부여)
최초의 인공 연못 궁남지를 다녀와서
연꽃은 연못과 습지에 심어 기르는 여러해살이 풀 수생식물로, 진흙 속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자라면서도 물들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는 깨끗함과 향기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삶의 지혜가 연꽃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백제시대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로 유명한 부여 궁남지를 몇일전 가까운 친구가 적극 추천도 있고 해서 찾아가 보니 나름대로 임팩트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홍련, 백련, 황금련, 수련 등 1,000만송이 연꽃들이 12만여평에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앞서 이 일대에서 '연꽃에 빛과 향을 품다'를 주제로 부여서동축제가 열렸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정원관광 자원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부여는 공주와 전북 익산의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유산을 한데로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기념으로 금년 8월 말까지 모든 유적지(부소산성, 궁남지, 낙화암, 정림사지 등)가 입장료가 무료이었다. 태풍의 영향이라서인지 여름날인셈 치고 꽤 시원해서 날씨까지 우리를 도와 주었다.
점심은 지역 향토음식으로 잘 알려 진 연잎밥을 먹으로 갔는 데, 연잎을 벗겨내니 특유의 향과 달콤함이 베어 있고, 거기에 각종 몸에 좋다고 하는 재료들이 듬뿍들어 있어 건강식 웰빙음식으로 충분하였다.
연꽃과 같은 사람, 연꽃의 10가지 의미
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피면 물속의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향기가 연못에 가득하다. 한사람의 인간애가 사회를 훈훈하게 만들기도 한다. 고결한 인품은 그윽한 향기를 내어서 사회를 정화시킨다. 한자락 촛불이 방안의 어둠을 가시게 하듯 한 송이 연꽃은 진흙탕의 연못을 향기로 채운다.
본체청정(本體淸淨) 연꽃은 어떤 곳에 있어도 푸르고 맑은 줄기와 잎을 유지한다. 바닥에 오물이 많아도 그 오물에 뿌리를 내린 연꽃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항상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은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제염오(離諸染汚)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주변의 부조리와 환경에 물들지 않고 고고하게 자라서 아름답게 꽃피우는 사람을 연꽃같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불여악구(不與惡俱) 연꽃잎 위에는 한 방울의 오물도 머무르지 않는다. 물이 연잎에 닿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물방울이 지나간 자리에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불의와 거리가 먼 사람, 불의가 있는 곳에서도 결코 물들지 않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면상희이(面相喜怡) 연꽃의 모양은 둥글고 원만하여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냥 온화해 지고 즐거워진다. 얼굴이 원만하고 항상 웃음을 머금고 있으며 말은 부드럽고 인자한 사람은 옆에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이 화평해 진다.
유연불삽(柔軟不澁) 연꽃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그래서 좀처럼 바람이나 충격에 부러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생활이 유연하고 융통성이 있으면서도 자기를 지키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견자개길(見者皆吉) 연꽃을 꿈에 보면 길하다고 한다. 하물며 연꽃을 보거나 지니고 다니면 좋은 일이 아니 생기겠는가? 많은 사람에게 길한 일을 주고 사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개부구족(開敷具足) 연꽃은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 연꽃 열매처럼 좋은 씨앗을 맺는 사람을 연꽃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은 만개했을 때의 색깔이 곱기로 유명하다. 활짝 핀 연꽃을 보면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포근해짐을 느낀다. 사람도 연꽃처럼 활짝 핀듯한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인품의 소유자가 있다. 이런 분들과 대하면 은연중에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진다.
생이유상(生已有想) 연꽃은 날 때부터 다르다. 넓은 잎에 긴 대, 굳이 꽃이 피어야 연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연꽃은 싹부터 다른 꽃과 구별된다. 장미와 찔레는 꽃이 피어야 구별할 수 있다. 백합과 나리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사람 중에 어느 누가 보아도 존경스럽고 품위 있는 사람이 있다. 옷을 남루하게 입고 있어도 그의 인격은 남루한 옷을 통해 보여 진다.